ADVERTISEMENT

터치 가고 목소리 시대 … 이젠 인터넷 검색도 음성이 대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4면

“터치 컨트롤의 와이드스크린 아이팟, 획기적인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기기.”

타이핑보다 음성이 인식 속도 4배 #목소리로 질문 맥락까지 파악 가능 #2020년 검색 절반 음성으로 할 것 #디지털 접근 경로 완전히 달라져 #포털·통신업계 경계없이 무한경쟁 #개인 빅데이터 많이 확보해야 유리

2007년 1월9일, 스티브 잡스 당시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한 손에 ‘아이폰’을 든 채 이렇게 설명했다. 전화기와 포터블 컴퓨터의 경계를 허문 이 제품은, 손 끝을 화면에 대는 족족 새로운 정보 세상을 펼쳐 보였다. 정보기술(IT) 전문가들은 이 장면을 ‘PC 전성기가 끝난 시점’으로 친다. 이후 10년간 인간의 디지털 접근 경로는 터치(손가락)가 장악해왔다.

지난 22일 국내 대표 인터넷 기업 네이버는 자사의 모바일용 앱에서 음성만으로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을 선보였다. 단순히 검색어를 알아듣는 정도를 넘어 질문의 맥락을 파악하고 답변을 내놓는 수준이다. 검색을 할 때 손으로 자판을 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질문 속 특정 검색어가 극장 이름인지 서점 이름인지 표현이 모호했더라도 “이 검색자는 평소 토요일 이 시간에는 골프장 이름을 자주 검색했다”는 판단이 서면 같은 입력어 중에 가장 가까운 골프장을 찾아 검색 결과를 보여준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구글도 이미 검색 기능에 음성 입력 서비스를 하고 있다. 애플·삼성 같은 하드웨어 제조사들은 ‘시리’, ‘빅스비’ 같은 인공지능 서비스를 통해 음성 명령어를 듣고 정보를 제공하는 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다. 네트워크 업체인 KT·SKT 등도 ‘기가 지니’ ‘누구’ 같은 인공지능 스피커를 상품화 화하고 있다. IT전문가인 박용후 피와이에이치 대표는 “인류는 현재 디지털 정보로의 접근 경로가 터치에서 음성으로 크게 변화하는 초입에 서 있다”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터치로는 통상 1분에 40개가량의 단어를 타이핑할 수 있지만, 음성 플랫폼을 이용하면 같은 시간에 150단어를 인식할 수 있다”며 “한번 높아진 편의성에 익숙해지면 과거의 서비스로 대거 돌아가는 일은 IT 업계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터치 대신 음성으로 검색하는 비율은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5월 구글개발자회의에서 순다 피차이 CEO는 구글의 모바일 검색 중 20%가 음성 검색이라고 공개한 바 있다. 최근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컴스코어는 2020년에는 전체 검색의 50%가 음성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특이한 점은 과거에는 정보통신기술(ICT)의 4축으로 불리는 ‘C(콘텐트)-P(플랫폼)-N(네트워크)-D(디바이스)’ 업체들이 각각의 장점을 가진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채 부분적으로 협업했는데, 음성인식 분야에서는 모두가 경쟁자가 됐다는 점이다. 구글·네이버 같은 플랫폼 업체, 삼성·애플 같은 디바이스 업체, 통신망을 가진 업체들이 다 뛰어들어 음성인식 시장의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호서대 기술전문경영대학원 류민호 교수는 “기존의 검색이 지금까지는 네이버·카카오·구글과 같은 검색 사업자 간의 경쟁이었다면, 향후에는 아마존·애플·삼성전자·SK텔레콤처럼 다양한 영역의 국내외 사업자들까지 포함하는 무한 경쟁 시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음성검색 고도화 경쟁의 뒤편에서 벌어지는 빅데이터 확보전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누가 신상·취향·생활 패턴 등 개개인의 정보를 더 많이 갖고 있느냐가 검색 결과의 품질을 좌우할 수 있어서다. 박 대표는 “유럽에서 구글을 적대시하는 분위기가 갈수록 짙어지는 것은 기존 포털 검색 시장을 다 내주면서 개개인의 검색 정보를 구글에 모두 빼앗겼는데, 이 데이터들이 음성검색의 시대를 맞아 고도의 ‘개인별 맞춤형(Customized) 서비스로 다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편의성이 높아질수록 종속성이 높아질 거라는 게 유럽이 구글을 두려워하는 진짜 이유”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인공지능 분석 기술이나 빅데이터 보유량, 서비스 생태계 등을 고려할 때 국내 기업이 영어권 시장에서 아마존이나 구글을 앞서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한국어 시장이라면 국내 기업이 얼마든지 음성 검색 패권을 쥘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딥러닝(강화학습)‘ 기술의 발달로 구글처럼 한국어 DB가 많지 않은 기업들의 한국어 처리 능력이 최근 빠르게 고도화하고 있는 점은 불안 요인이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