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전문 2천통 첫 공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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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영수상에 일 3·1운동탄압 중재요청등 담아
3·1운동이 일어나고 임시정부가 세워질 당시 미국에 망명중이던 고 이승만박사가 상해등의 임정요원 및 외국정부요인·교민대표들과 주고받은 영문 전보 2천여점이 3·1절을 앞둔 29일 오후 이화장에서 이박사의 양자 이인수씨(57·명지대 정치학교수)에 의해 60여년만에 처음 공개됐다.
이박사가 임시정부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아홉 묶음으로 묶어 보관해봤던 이 전문들은 1918년 11월28일당시 샌프란시스코 교민회인 한국국민회에서 하와이 호놀룰루에 망명중이던 이박사에게 보낸 『약소국회의 참가대표로 선출됐으니 워싱턴으로 와달라』는 내용에서부터 1925년까지 임정초창기의 독립운동 내용까지를 담고있어 당시 독립 운동사를 재정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학자는 평가하고있다.
이교수는 이들 전문과 함께 1921년3월1일 상해에서 열린 3·1독립선언 기념식에서 이박사와 안창호·신규식·이동령선생 등 당시 임정요인들과 함께 교민들을 상대로 행사를 갖는 미공개 사진 1점도 아울러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전문들중에는 1919년 3월11일 당시 영국의 「로이드·조지」수상에게 『한국민이 일본의 식민지 통치에 항거, 독립을 선언했으며 이와관련, 일경에 연행된 수천명의 한인들이 부당하게 생명을 잃거나 고문받지 않도록 중재해달라』는 내용의 3·1 독립운동과 관련된 전문이 발견됐는데 이교수는 3·1운동직전 이박사가 하와이에서 국내의 독립운동을부추기는 지시는 비밀유지를 위해 선교사 등을 통해 직접 인평으로 했기 때문에 3·l운동 직전의 전문은 나타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문중에는 특히 19l9년 4월24일 한성임시정부 선포이후 집정관총재로 추대된 이박사가 그해 6월 미국·영국·프랑스·일본·이탈리아 등 1차대전 전승국들의 파리강화회의때「Republic of Korea」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 각국 대표자들에게 우리의 독립을 알리고 김규직박사를 우리정부의 전권대사로 회의에 보냈다는 내용이 있으며 김박사에게 보낸 전문에도 『독립된 우리정부의 전권대사로서 우리의 독립을 분명히 알리라』는 훈령내용도 있다.
또 이박사가 우리의 독립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기위해 교민들을 동원하려고 노력한 사실을 생생히 보여주는 것도 있는데 1919년 4월2일 서재필박사와 함께 계획한 필라델피아에서의 한국인 독립축하 행진대회(한인자유대회)에 『많은 사람을 보내달라』는 내용의 전문을 샌프란시스코교민회에 보낸 것 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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