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싯배 사고 1주일]부활한 해경 또다시 동네북 된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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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사고를 막지 못한 것과 또 구조하지 못한 것은 결국 국가의 책임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일 오전 위기관리실에서 영흥도 앞바다 낚싯배 침몰과 관련해 보고받고 긴급대응을 지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일 오전 위기관리실에서 영흥도 앞바다 낚싯배 침몰과 관련해 보고받고 긴급대응을 지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15명이 숨진 인천 영흥도 낚싯배 사고와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다. 말 그대로, 이유야 어찌 됐든 해경이 결과적으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 "사고 막지 못하고 구조 못한 것 국가책임" 강조 #"해상재난·구조 책임지겠다" 헛구호… 뼈를 깎는 성찰 필요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의해 해체된 후 구조능력 향상 없어 #전문가 "인원·장비 신속 확충, 즉각대응 시스템 마련" 지적

문 대통령이 사고 당일인 지난 3일 신고 접수 52분 만에 첫 보고를 받은 뒤 해경에 “구조 작전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지시했지만 이후 부실하고 미흡한 해경의 대응이 속속 드러났다.

해경구조대가 지난 3일 영흥도 진두선착장에서 낚싯배 침몰사고 현장으로 출동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해경구조대가 지난 3일 영흥도 진두선착장에서 낚싯배 침몰사고 현장으로 출동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출동할 수 있는 배가 없다’는 이유로 바다가 아닌 육로로 먼저 출동한 해경 특수구조대, 신고 접수 10분이 지나서야 내린 현장 출동 명령,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의 사진을 전송받고도 허둥지둥한 모습 등이다.

이번 사고는 2014년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으로 해체된 해경이 부활한 이후 발행한 첫 대형 해양사고였다. 세월호 사고 당시 전문성이 없고 민첩하지 못했던 해경의 모습은 이번에도 달라지지 않아 비난이 쏟아졌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의해 '정치적 제물'이 돼 한순간에 해체된 해경이 지난 3년여간 해양 사고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는 데 집중할 수 없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소속, 본청 이전 등 구조 능력과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연관이 없는 일들에 시간과 노력만 낭비하면서 세월호 당시와 비교해 구조 능력이 전혀 향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영흥도 낚싯배 사고 관련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이 영흥도 낚싯배 사고 관련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종회 국민의당 의원은 지난 7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해양수산부·해양경찰청 현안보고에서 “해경의 존재 이유는 사고인데, 사고에 대한 인식의 문제로 철저한 안전 교육이나 인식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1953년 내무부 소속 해양경찰대로 창설된 해경은 경찰청 소속을 거쳐 해양수산부 외청으로 승격했지만 2014년 4월 세월호 사고 당시 304명의 목숨을 구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해체 선언과 함께 해체됐다.

지난 7월 해양경찰청이 부활하면서 일선 지방해양경찰청에서 간판을 바꿔 달고 있다. [사진 해양경찰청]

지난 7월 해양경찰청이 부활하면서 일선 지방해양경찰청에서 간판을 바꿔 달고 있다. [사진 해양경찰청]

그해 11월 ‘해양경찰’ 간판을 내리고 국민안전처 소속 해양경비안전본부로 조직이 축소된 해경은 문재인 정부 탄생과 함께 지난 7월 부활했다. “국민안전처에서 소방방재청과 해경을 독립시켜 각각 육상과 해상의 재난을 책임지도록 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돼 조직이 부활했지만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가 해경 부활 이후 첫 조직 수장으로 일반 경찰 출신인 박경민 당시 인천지방경찰청장을 임명한 것도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박 청장이 해양 전문가가 아닌 점에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13일 오전 인천 중구 인천해양경찰서 전용부두에서 열린 제64주년 해양경찰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해양경찰청기에 수치를 달아주자 박경민 해양경찰청장이 흔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13일 오전 인천 중구 인천해양경찰서 전용부두에서 열린 제64주년 해양경찰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해양경찰청기에 수치를 달아주자 박경민 해양경찰청장이 흔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우왕좌왕하는 해경의 모습처럼 해양경찰청 청사도 이전을 반복하며 어수선한 분위기를 더하고 있다. 현재 세종시에 위치한 해양경찰청 본청은 이르면 내년 초 인천으로 이전한다.

세월호 참사로 조직이 해체된 뒤 국민안전처 산하 해양경비안전본부로 재편돼 지난해 8월 인천에서 왔다가 2년도 되지 않아 문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돌아가는 것이다. 상황실 설치 등 이사비용으로 400억원 안팎을 써 일었던 세금 낭비 논란이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27일 정부세종청사 해양경찰청에서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오른쪽에서 두번째)과 박경민 청장(오른쪽에서 세번째) 등 참석자들이 현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 27일 정부세종청사 해양경찰청에서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오른쪽에서 두번째)과 박경민 청장(오른쪽에서 세번째) 등 참석자들이 현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호래 군산대 해양경찰학과 교수는 “(최일선) 현장 구조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해양사고의 경우 특히 시간이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부족한 인원·장비 문제를 해결해 일선 파출소(출장소)에서도 즉각 대응이 가능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노 교수는 지적했다.

목포=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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