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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소소한 일상에 있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61호 32면

최근 서울의 한 장례식장에서 저자를 만났다. 짙은 턱수염과 두꺼운 눈썹의 캐리커처에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 이사라는 직함까지 버무려져 수다스런 아저씨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은 단숨에 깨졌다. 그는 참 조용했다. 자리가 낯설었던 탓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저자에게선 정적인 기운이 흘렀다. 그와 그의 글이 닮았다는 생각이 점점 들었다. 저자의 글은 그림으로 따지면 세밀화에 가깝다. 그는 바쁜 일상의 한 순간을 확 잡아 끌어와 굽이굽이, 명징하게 표현하는 재능이 있다.

『행복어 사전』 #저자: 김상득 #출판사: 오픈하우스 #가격: 1만5000

책은 저자가 중앙SUNDAY S매거진에 ‘김상득의 행복어사전’이라는 코너로 2015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연재한 에세이를 묶었다. 누구에게나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행복을 글감으로 삼기 위해 그는 ‘주변시 글쓰기’ 전략을 펼친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주변시는 어둠 속에서 한 사물만 오래 보고 있으면 상상하는 대로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주변을 둘러봐야 그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야간 시(視)의 특징 중 하나다. 그러니까 행복을 정의하기 위해 그는 줄기차게 행복의 주변을 쓴다. “행복어가 아니라 행복어의 주변어ㆍ파생어ㆍ연관어가 행복의 변죽을 계속 울리고 있다”고 저자는 말하지만, 그 변죽의 울림이 꽤 폭넓다. 66개의 에피소드와 함께 66개의 일상어가 키워드로 뽑혀 있다. 행복을 단숨에 정의하는 것보다 상황별로 생각해 볼 수 있으니, 더 독자 맞춤형이랄까.

선물을 정의하는 그의 글솜씨를 보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내와 저녁을 먹다 남편은 기습을 당한다. “당신 이번 크리스마스에 나한테 선물 줄 거지?”라는 질문에 남편은 생각지도 못한 답을 만들어 내느라 절절맨다. 청문회 자리의 단골 멘트인 동문서답을 했다가, 오래전에 본 영화를 떠올렸다가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에게 한 선물에 도달한 남편은 나름 역공을 한다. “당신은 이번 크리스마스에 나한테 무슨 선물할 거야?”라고. 아내의 답은 간단하다. “비밀이야. 선물은 비공개가 원칙이야.”

어떤 선물이 좋은 선물일까. “선물이란 쓸모없어야 한다(프랑스 작가 미셸 투리니에)”는 주장도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저자는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선물의 가치는 상징적이고, 선물은 내용보다 형식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결국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고 받는 행위, 그게 행복 아닐까.

에피소드마다 적힌 저자의 행복어 또는 일상어 정의가 촌철살인이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어머니는 ‘다 부를 수 없는 이름’이고, 온도는 ‘목소리 큰 사람이 결정하는 것’, 잣대는 ‘나에게 너그럽고 남에겐 엄격한 것’이다. 글쓰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글 제목 뽑는 일은 더 어려울 터다. 전시회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게 무제 아니던가. 이에 대해 저자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고뇌를 보는 사람에게 떠넘기는 무책임한 짓”이라며 제목을 이렇게 정의한다. ‘타락하면 무제가 되고 더 타락하면 낚시가 되고.’

일상어를 쓰다 보니 저자의 일상은 종종 글 소재가 된다. 소변기 앞에 오래 서 있던 중학교 한문 선생님과 입안에 침이 가득한 재수 학원 국어 선생님을 흉내 내던 어린 날을 반성하며 저자는 “나는 늙지 않을 줄 알았다”고 전한다. 그 흉내는 돌아와서, 모두 저자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흉내, 그것들은 돌아오는 것’이고, 잠시 연재를 멈춘 그의 글도 돌아오길 바란다.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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