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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한국 팬문화를 수출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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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문화부장

양성희 문화부장

팬덤은 한국 음악 산업을 이해하는 주요한 키워드다. 아이돌 팬덤은 더욱 그렇다. 조직적인 움직임이 특징이다. 그룹별로 색깔이 다른 응원봉을 들고, 노래 간주에 멤버들 이름을 외치거나 떼창을 하고, 팬들이 공공장소에 스타의 응원광고를 내는 것 등은 다분히 한국적인 팬문화다. 최근에는 ‘프로듀스101’처럼 팬들이 ‘국민프로듀서’란 이름으로 멤버를 뽑는 TV프로그램들이 유행하면서 팬덤의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 ‘워너원’처럼 팬덤이 데뷔시킨 아이돌들이 기존 기획사의 아이돌들을 밀어내는 모양새다.

조직적인 국내 팬문화 공유하는 방탄의 해외 팬 #방탄의 소셜 미디어 전략이 결합돼 성공담 일궈

물론 부정적 모습도 적잖다. 엠넷아시안뮤직어워드(MAMA) 결과에 불만을 품은 EXO 팬들이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MAMA를 폐지시켜 달라’는 글을 올린다든지, 워너원 강다니엘 팬들이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홍보 입간판을 내걸었다가 과시적인 팬심이라고 빈축을 사는 식이다. 음원을 밤샘 스트리밍하는 불공정 행위도 심심치 않게 한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열혈 팬덤 없이는 연예 비즈니스는 물론이고 정치적 성공도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는 방탄소년단(이하 방탄·BTS)의 성공담 뒤에도 팬덤의 활약이 숨어 있다. 국내외 팬덤이 결합한 글로벌 팬덤이다. 선배 K팝 아이돌들도 유튜브 등을 통해 글로벌 팬덤을 이끌었지만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방탄은 디지털 무기 중에서도 쌍방향 소통이 가장 활발한 SNS를 내세웠고, 그와 함께 한국식 팬문화가 해외 팬들에게 확산됐다. 가령 아메리칸뮤직어워드(AMA) 무대에서 이들이 ‘DNA’를 부를 때 미국의 소녀팬들은 마치 한국 소녀팬들이 그렇듯 노래를 따라 부르며 눈물을 글썽였다. 한국식 ‘팬챈트(아이돌 팬들이 사전 학습으로 만들어낸 의례적 집단 호응)’의 완벽한 구현이다.

방탄이 이번 앨범을 낸 직후인 지난 9월 빌보드의 K팝 전문 칼럼니스트 제프 벤저민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방탄의 (미국)팬들은 매우 똑똑하다. 그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상에서 어떻게 활동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비록 라디오 방송 횟수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한국어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만으로도 승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K팝 연구자의 전언에 다르면 이미 방탄의 해외 팬덤은 지난해부터 아이튠즈와 앨범 구매에 조직적으로 나섰다. BTS를 스스로 ‘발견’했다고 생각하는 해외 팬덤과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 국내 팬덤 간 갈등도 적잖았다. 그는 “이 같은 앨범의 조직적 구매 전략은 한국 팬덤의 유력한 수출 상품”이란 표현도 썼다. 한 블로거는 “저스틴 비버나 원디렉션 같은 해외 아이돌들도 팬클럽이 있지만 이처럼 조직화되거나 열성적인 팬문화는 없다. BTS 미국 팬들이 한국 아이돌 팬들과 똑같이 스트리밍하고 투표하며 실시간 트렌딩 트윗 총공을 하는 걸 보면 그저 놀라울 뿐”이라고 썼다.

아마도 이처럼 열성적이고 조직적인 팬문화를 해외 팬들에게까지 확산시킨 결정적인 역할은 SNS였을 것이다. SNS 강자인 방탄은 24시간 무대 뒤 일상을 실시간 중계했고, 일일이 영어 댓글로 소통했다. 콧대 높은 서구 스타나 아이돌들과는 달리 격의 없이 친근한 관계를 맺으며 팬들은 스스로를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이들의 성장을 응원하는 ‘친구’ 혹은 ‘후원자’로 위치시켰다. 방탄 역시 시상식 때마다 ‘아미’(팬클럽 이름)에게 감사를 표했다. 방탄의 성공은 스타와 팬덤이 함께 일군 일대 사건인 것이다.

한국 가수 최초로 서구 주류 음악시장을 제대로 공략한 싸이의 성공이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한 것은 ‘강남스타일’의 인기가 싸이 개인의 인기(팬덤)로 이어지지 못했던 탓도 크다. 우스꽝스러운 동양 남성이라는 스테레오타입에 기대 소비된 싸이와 달리 방탄은 음악, 퍼포먼스, 세련된 스타일을 두루 갖춘 매력적인 한국 남성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디어의 흐름을 정확히 뀄다. 그들이 K팝의 역사를 새로 쓴 진짜 이유다.

양성희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