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빙점' 한달 만에 복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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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기관지인 중국청년보(中國靑年報)의 주간 인기부록 빙점(氷點)이 정간 1개월여 만인 1일 복간됐다.

그러나 중국 언론계의 상당수 인사들은 "빙점이 얼음(氷) 속에서만 부활했다"고 비꼬았다. 하드웨어만 되살아났을 뿐 빙점의 정신은 살아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왜 그럴까.

우선 내용이다. 빙점 부활 호는 앞면 전체를 할애해 빙점의 정간 이유가 됐던 광저우(廣州) 중산(中山)대학 위안웨이스(袁偉時) 교수의 논문 '현대화와 역사교과서'를 비판하는 논문을 게재했다. 집필자는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의 장하이펑(張海鵬) 연구원이다. 전면 반박 논문은 극히 이례적이다.

위안 교수는 1개월 전 빙점에 게재된 논문에서 "1900년 발생한 의화단 사건에서 외국인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등 반문명.반인륜적 잘못을 저질렀다"고 고발한 뒤 "그러나 중국의 역사교과서는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위안 교수는 이어 "교과서는 정치 선전물이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이에 대해 장 연구원은 '반제(反帝).반봉건은 근대 중국역사의 주제'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위안 교수의 관점은 신중국 성립 이후 마르크스주의를 지도 이념으로 삼은 우리 학술계가 중국 근대사 연구에서 얻어낸 기본 결론을 부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장 연구원은 이어 "위안 교수의 논문은 정확성을 결여했다"고 지적했다. 즉, 그는 학자들의 연구를 근거로 "1900년 5월 31일 전까지 의화단 운동의 모든 과정 중에 중국의 어느 지방에서도, 단 한 사람의 외국인도 단원들 손에 죽지 않았다"며 "단 하나의 예외는 산둥(山東)에서 한 외국인이 피해를 본 것뿐"이라고 반박했다.

장 연구원은 끝으로 "위안 교수가 서술한 역사는 자신의 기호에 따라 마음대로 역사적 사실들을 골라 꿰어 맞춘 잡문에 불과하다"며 "이는 역사 평론이 아니라, 개인적 감상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빙점이 여전히 얼음 안에 있다고 보는 둘째 근거는 인사 조치다. 당 중앙선전부는 빙점의 리다퉁(李大同) 편집인과 루웨강(盧躍剛) 부편집인을 해임했다.

리는 지난해 8월 인터넷에 공개 서한을 띄워 "공청단이 중국청년보 기자들을 바보로 만들려 한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던 인사다. 빙점이 정간된 1월 25일에도 언론계 동료에게 편지를 보내 "국민당 군대의 항일투쟁 성과 보도 등을 놓고 공청단과 갈등을 빚은 것이 정간의 이유"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긍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언론자유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진 점을 들 수 있다. 빙점 정간 직후 동료 언론인들과 퇴임 당 간부들이 속속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독자들의 구독 해약도 이어졌다. 결국 당 중앙선전부는 ▶비판논문 게재 ▶편집간부 경질을 조건으로 복간을 허용했다.

빙점의 리 전 편집인은 최근 일본 아사히(朝日)신문과의 접촉에서 "(위안 교수의 논문에 대한) 비판 논문도 다양한 사고의 하나이므로 당연히 허용될 수 있다"며 "다만 앞으로 이 반박 논문에 반대하는 의견을 빙점이 소개하지 못한다면 비록 이름은 부활했지만 몸체는 계속 잠든 것이나 다름없다"라고 말했다.

베이징=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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