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햄버거 패티' 구분 않고 영장기각 비판한 검찰…무리한 수사에 법원도 우려

중앙일보

입력

용혈성요독증후군(HUSㆍ햄버거병) 원인 규명을 위한 검찰의 수사방식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대장균 오염 가능성 패티는 쇠고기 패티" #햄버거병 발병 주장 피해 사실과 무관 #검찰, 패티 구분 않고 발표해 오해 야기 #한 판사 "영장전담 판사, 국민적 오해 #우려해 이례적으로 장문의 기각 사유" #법조계 "햄버거병 수사, 무리해 보여 우려"

당초 수사는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고 HUS가 발병했다”는 피해자와 가족들의 고소 건을 규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한국 맥도날드에 햄버거 패티를 공급한 업체로 수사를 확대하면서 햄버거병과 관련 없는 ‘쇠고기 패티’의 오염을 문제 삼고 있다. 피해 아이들이 먹은 햄버거는 맥도날드 불고기버거로, 돼지고기 패티가 쓰였다.

패티 제조업체인 맥키코리아 직원 3명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지난 5일 기각된 이유도 이와 맞닿아 있다. 서울중앙지법 권순호 영장전담 판사는 이날 이례적으로 장문의 기각 사유를 적어 “혐의 전반에 대해 범죄에 해당되는지, 범행 의도가 있었는지, 이들의 행위가 실질적으로 위험했는지 등을 충분히 심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피의자별로 구체적인 행위 특정도 부족하다”며 검찰 수사의 부실함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같은 법원의 다른 판사는 "권 판사가 검찰의 수사 내용이나 공보 방식이 사람들의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해 장문의 기각 사유를 적은 것으로 안다. 이 사건에서 검찰이 문제 삼는 쇠고기 분쇄육은 햄버거병 사건에서의 패티와 고기 종류도 달라 그 점이 부각돼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앞서 이들 3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장출혈성 대장균(O-157) 오염 가능성이 있는 햄버거 패티를 한국 맥도날드에 공급한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쇠고기 패티인지, 돼지고기 패티인지는 구분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별개의 사건"이라는 검찰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법조계에선 "검찰이 맥도날드에 햄버거 패티를 독점 공급하는 맥키코리아를 교두보 삼아 한국 맥도날드의 책임을 규명하려 한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른바 '햄버거병' 파문으로 인한 '햄버거 포비아'(햄버거 공포증)가 확산되면서 서울의 한 맥도날드 매장은 고소가 이뤄졌던 지난 7월 당시 점심시간임에도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연합뉴스]

이른바 '햄버거병' 파문으로 인한 '햄버거 포비아'(햄버거 공포증)가 확산되면서 서울의 한 맥도날드 매장은 고소가 이뤄졌던 지난 7월 당시 점심시간임에도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연합뉴스]

검찰은 법원의 영장 기각에 대한 반박 글을 출입기자들에게 보낼 때도 패티의 종류를 밝히지 않았다. 검찰 측은 “이들이 장출혈성 대장균인 O-157균 오염 여부를 확인하는 키트검사 결과를 조작한 뒤 햄버거 패티 100만개를 맥도날드에 납품, 소비자들에게 유통시켰다”고 밝혔다. 또 “장출혈성 대장균에서만 배출되는 시가독소 유전자가 검출된 햄버거용 패티 3000만개에 대해선 추가 배양 검사를 하지 않고 전량 납품했다”고도 했다. 검찰은 “이들에 대한 보강 조사 후 영장을 재청구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이 '별건 수사'임을 강조한다고 하는데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되는 쇠고기 패티가 마치 햄버거병 수사에서의 돼지고기 패티와 동일한 것으로 착각하게끔 유도한 것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또 "검찰이 영장 기각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사실상 피의사실을 유출한 것도 문제다"고 비판했다.

검찰 관계자는 6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맥키코리아의) 돼지고기 패티에선 시가독소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를 명확히 구분 짓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검찰의 햄버거병 수사는 고소장이 접수된 후 5개월째 답보 상태다. 아이들이 먹은 실제 햄버거의 패티를 확보해야 햄버거병 발병의 인과 관계를 의학적·법리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데 사건이 발생한지 오래 지나서 패티를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고소 당시부터 법조계에선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는 다르다. 입증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총 4건(5명)의 고소 중 의학적으로 HUS 진단을 받은 어린이도 A양(5ㆍ1차 고소)과 B군(2ㆍ4차 고소) 뿐이다. 나머지 어린이들은 설사ㆍ혈변이나 출혈성 장염 증상만 보였다.

작년 9월 용혈성요독증후군(HUS) 진단을 받은 아이의 모습. [사진=피해자측 법률대리인 황다연 변호사 제공]

작년 9월 용혈성요독증후군(HUS) 진단을 받은 아이의 모습. [사진=피해자측 법률대리인 황다연 변호사 제공]

수사가 지지부진한 사이 또 다른 변수도 등장했다. B군의 가족이 발병 약 1주일 전인 지난해 여름에 햄버거병이 집단 발병한 일본 오키나와를 여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관련기사

그럼에도 검찰은 한국 맥도날드에 햄거버 패티를 독점 납품하는 맥키코리아를 직접 겨냥해 수사 범위를 확대했다. 법조계에선 ‘맥키코리아의 대장균 오염 패티 생산→맥도날드에 납품→맥도날드 관리 소홀 또는 묵인→햄버거병 발병’이라는 구도를 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실제로 검찰은 맥키코리아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인 뒤 이 회사 공장장 등 3명에 대한 구속 수사를 벌이려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급 판사는 "식품 사건은 국민적 관심사다. 하지만 과거 우리 사회에서 ‘공업용 우지’ 파동이나 ‘포르말린 골뱅이’ 사건처럼 오해로 인해 해당 업체들이 피해를 입은 사례가 있었다”며 “이런 부분에 대한 우려를 검찰도 반영해 신중한 수사를 벌여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도 “패스트푸드는 정크푸드라는 대중적 인식, 글로벌 기업에 대한 막연한 불신 같은 선입견을 바탕으로 검찰이 구속수사를 통해 수사의 돌파구를 찾으려 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국민 건강을 위한 먹거리 수사가 오히려 국민적 오해를 키우는 방식으로 진행되선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윤호진 기자 yoongo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