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비즈니스 인사이트] 아프리카 군벌의 ‘돈줄’ 광물 유통 더 옥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8면

‘분쟁광물’ 이어 ‘책임광물’ 규제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중부 아프리카지역 DR콩고의 루붐바시에 위치한 노천광산. [중앙포토]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중부 아프리카지역 DR콩고의 루붐바시에 위치한 노천광산. [중앙포토]

DR콩고·남수단·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 중부 아프리카지역에는 지금도 내전이 계속되는 나라가 많다. 정부군은 그렇다 치더라도 반군단체나 군벌들이 많은 병력을 수십 년째 유지하면서 싸움을 계속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식량과 의복 등 생필품은 물론이고, 특히 무기 구입에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도 중앙아프리카 지역에는 총성이 멈추지 않는다.

주석·탄탈룸·텅스텐·금 등 4개 광물 #미국·EU, 분쟁 지역서 수입 차단 #아동 노동착취 불법 광산도 규제 #한국 기업들, 대응 방안 마련해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바로 이곳에 묻혀 있는 풍부한 광물자원이 이들 군벌의 마르지 않는 돈줄이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광물을 채굴하는 과정에서 아동 노동을 착취하는 것도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에 따르면, 중앙아프리카 분쟁지역에서는 7세 어린이까지 광산노동에 동원되고 있다. 이 어린이들은 하루에 1~2달러를 받고 12시간 이상 중노동에 시달리며, 기본적인 안전장비도 제공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중부 아프리카 분쟁의 뿌리를 뽑기 위해 반군단체나 군벌들이 생산하는 광물에 대한 규제에 나서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 주로 생산되는 주석·탄탈룸·텅스텐·금 네 가지 광물을 ‘분쟁광물(Conflict Minerals)’로 규정하고 유통을 차단하고 있다. 미국은 광물 판매자금이 무장단체로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2010년 7월 분쟁지역 생산 광물을 분쟁광물로 지정하는 ‘도드-프랭크 금융규제개혁법(Dodd-Frank Act)’을 통과시켰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 법안의 분쟁광물 조항은 미국 상장기업이 DR콩고 등 10개국의 분쟁지역에서 생산된 4개의 분쟁광물과 파생물을 사용했는지 여부를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법안은 2013년부터 적용됐으며, 직접적 규제 대상은 미국 상장기업이지만 이들 기업에 부품을 공급하는 타국 기업도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광물의 출처를 일일이 추적해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SEC는 ‘합리적 수준의 원산지 조사’를 요구한다. 여기서 합리적 수준이란 100%까지 확인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 표현이다. 이렇게 해서 만든 보고서를 SEC는 해당 회사 웹사이트에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2014년 분쟁광물 규제 초안을 발표하고, 광물 및 금속(반제품) 수입업자를 대상으로 ‘책임 있는 수입자 자기인증’ 실시를 권하고 있다. 미국에 비해 대상 범위가 좁고 구속력이 약하지만 첫발을 내디딘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OECD도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공급망 실사 5단계 프레임워크’를 통해 관련 지침을 제시한다.

이처럼 아직 미흡한 점이 있지만 분위기 조성과 함께 실천 가능한 부분부터 실행에 옮기는 노력만으로도 고무적인 성과가 나타났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따르면, 2010년 분쟁광물 거래를 근절하기 위한 운동이 본격화된 이후 2013년까지 아프리카 분쟁지역 군벌들이 주석·텅스텐·탄탈룸 밀거래로 얻는 수익은 35%로 쪼그라들었다. 이제 국제사회는 분쟁광물 규제의 격(格)을 한 단계 높이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분쟁뿐만 아니라 인권과 환경 문제를 야기하는 광물에 대해서도 규제를 준비하고 있다.

4대 분쟁광물과 주요 사용처

4대 분쟁광물과 주요 사용처

그래서 지난해 11월부터 새로 등장한 용어가 ‘책임광물(Responsible Minerals)’이다. ‘분쟁의 자금줄이 되지 않고 인권과 환경을 존중하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식으로 채굴된 광물’ 이란 뜻으로 그렇게 붙였다. 이에 따라 책임광물 여부를 묻는 지역은 종전의 분쟁광물 생산지역보다 훨씬 넓어졌고, 대상 광물의 종류도 많아졌다. 분쟁광물이 아프리카만의 이슈였던데 비해, 책임광물은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되는 주석과 콜롬비아의 텅스텐도 검증 대상에 포함한다. 이들 광산이 분쟁과는 상관없지만 아동노동 착취 등 강제노동이 이뤄지고 있어 이런 불법행위를 근절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는 의미다.

분쟁광물, 나아가 책임광물 규제는 한국기업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삼성, LG 등 주요 대기업이 미국 기업에 전자부품을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의 협력사까지 합치면 대상 기업의 숫자는 엄청나다. 이에 따라 분쟁광물을 사용하는 기업들의 공급사슬경영(Supply Chain Management, SCM)이 과거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됐다. 분쟁광물 공급사슬경영이란 무기자금·인권유린·환경파괴 등과 관련된 광물의 기업 간 거래를 차단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한 책임광물만 거래할 수 있도록 공급사슬을 효과적으로 확인하고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선진국 기업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글로벌 전자기업의 사회적 책임연대인 ‘전자산업시민연대(EICC)’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33개국에서 538개 기업이 광물 원산지 관련, 독립된 감사기관으로부터 감사를 받았다. 분쟁광물 원산지 확인보고서를 자체적으로 작성한 기업도 4400곳에 달했다. 기업 입장에서 인증 받는 절차가 어렵다보니 이를 배우기 위해 온라인 학습과정을 이수한 사람만 3만4000명에 달했다. EICC 회원사는 1년 전보다 12개가 많은 114개로 늘어났으며, 2016년 말까지 전 세계의 확인된 4대 분쟁광물 제련소의 82%가 ‘분쟁 무관 제련소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차 붐과 함께 최근에는 코발트가 분쟁광물로서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다. 원래 코발트는 규제 대상인 4개의 분쟁광물은 아니지만 광물광상학적으로 DR콩고 동부에서 분쟁광물과 함께 부산물로 산출되는 광물이라는 점에서 분쟁광물에 포함됐다. 최근 세계적으로 전기차 붐이 형성되면서 고용량 삼원계 배터리 제조용 코발트 수요가 폭증함에 따라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이렇게 공급이 달리는 상황에서 원산지가 분쟁과 무관한 코발트만 사용하다보면 수급이 더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코발트 원산지가 어디인지 현지 제련소 실사 등을 통해 정확히 밝히려면 기업 입장에서는 추가적인 비용도 감수해야 한다.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 업계와 정부가 힘을 모으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박경덕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국제관계학 박사

박경덕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국제관계학 박사

임석철 한국SCM학회 이사장(아주대 산업공학과 교수)은 “분쟁광물에 대한 국제적 제재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어 한국기업들도 체계적인 대응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경덕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국제관계학 박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