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원 더 주느니 수입차 산다" 차 값 오르면 국산차만 골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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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규제를 강화하면 수입차보다 국산차 업계가 큰 타격을 입었다. 사진은 화성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진행한 중앙일보 올해의차 심사. [중앙DB]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면 수입차보다 국산차 업계가 큰 타격을 입었다. 사진은 화성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진행한 중앙일보 올해의차 심사. [중앙DB]

정부가 규제를 강화해 자동차 가격이 전체적으로 오르면 소비자들은 국산 차 대신 수입 차를 사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규제 강화로 차량 가격이 오르면, 국산 차만 피해를 본다는 뜻이다. 반대로 정부가 규제를 풀면 과실은 국산 차가 더 누렸다. 정부 정책이 자동차 수요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수치적으로 분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자동차산업협회는 3일 이런 내용이 담긴 ‘정부 정책에 의한 차량 가격 변동에 따른 소비자 수요변화 연구용역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정부 규제가 강화되면 자동차 판매 가격이 오른다고 가정했다. 예컨대 정부가 배출가스 규제를 강화하면 자동차 제조사는 디젤 분진 필터(PDF) 등 부품을 추가로 장착하면서 판매가를 인상한다.
 이런 상황을 가정하고, 연구진은 24개월 이내 신차를 구매할 의향이 있는 19만9535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다. 판매가격이 달라질 때(-200만원,-100만원,+100만원,+200만원,+300만원,+500만원) 각각 어떤 차량을 살지 물었다(응답률 1.6%·3179명).
 결과적으로 가격이 똑같이 올라도 국산 차 수요는 감소하는 반면, 수입차 수요는 오히려 증가했다. 가장 큰 이유는 국산 차의 높은 ‘가격탄력성’ 때문이다. 국산 차 소비자는 가격이 오르면 구매를 포기하는 경향이 도드라졌다. 실제로 가격이 100만~500만원 오르면 전체 국산 차 소비자의 16.7%(평균 21만3192명)가 구매를 아예 포기했다. 수입차 구매 포기자(9.1%·2만4673명)의 2배에 가까운 비율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용역 결과 발표 #가격 똑같이 올라도 국산차 수요 더 줄어 #국산차 대신 수입차를 택하는 ‘이전효과’ #“친환경차협력금제도 도입등 규제 신중해야”

 연구용역을 진행한 조사·평가업체 컨슈머인사이트의 안주현 부장은 “국산 차는 수입차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데, 가격이 오르면 국산 차 구매를 고려하던 사람이 아예 구매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같은 상황에서 수입차는 오히려 더 잘 팔렸다. 국산 차를 사려고 했던 소비자가 대신 수입차를 구매하는 ‘수요이전 효과’ 때문이다. 김진아 컨슈머인사이트 과장은 “국산 차와 수입 차의 가격이 동일하게 오르면, 심리적으로 지급 가능한 범위인 ‘가격저항선’이 재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동일 가격대 수입 차로 이동하는 국산 차 소비자가 많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서 ‘국산 차에 200만원 더 쓰느니 차라리 한 세그먼트 아래 수입 차를 사고 만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다. 국산 차를 사려다가 수입 차 구매로 바꿔 타겠다는 이동 규모는 수입 차 구매를 포기하는 사람 수를 웃돌 정도로 많았다. 결국 정부 규제로 가격이 올라도 전체적인 수입 차 수요는 증가한다는 게 연구진 분석이다. 판매가 인상 폭이 100만~300만원일 때, 모두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다만 차량 가격이 500만원 오를 경우에만, 국산 차·수입차 모두 수요가 감소했다.

 반대로 정부가 규제를 풀어 자동차 가격이 하락하는 경우도 조사했다. 이때는 가격 인하 폭과 무관하게 항상 국산 차 수요가 수입차 수요보다 더 많이 늘었다. 국산 차 소비자가 수입차를 택하는 ‘이전 효과’가 급감한 덕분이다. 정부 규제 완화→가격 인하→신규수요 창출 효과의 혜택을 주로 국산 차 업계가 누린다는 의미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정부의 자동차 산업 정책은 자동차 내수 판매구조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며 “국산 차와 수입 차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서 규제·지원의 수준과 시기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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