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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교육도 민주화 시급|정범모<한림대 교수·교육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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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국교육엔 문제가 많다. 어느 것부터 거론해야할지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그러나 이 나라의 어제와 내일을 잇는 선상에서 한국교육의 지난날과 앞날을 전망하면 몇 가지는 크게 부각된다.
지난날 한 세대가 한국이 외곬으로 경제발전에 골몰했던 때였다면 앞으로 한 세대는 계속적 경제발전이라는 어려운 과제에다 민주적 정치발전이라는 벅찬 과제를 더 안게 되었다. 여기에 여러 가지 학문·예술·도의·인정이 활짝 피는 문화발전이 함께 한다면 금상첨화다.
이렇게 아주 줄여서 한국의 어제와 내일을 파악한다면 그 속에서 한국교육의 과제, 새 정부에 대한 기대도 드러난다. 그 완급경중의 판단은 논자마다 다르겠지만 여기에서는 네 가지를 급하고 중한 것으로 거론하려한다.
우선 무엇보다 교육도 민주화해야겠다. 그것이 새 정부가 내건 기치일 뿐만 아니라 교육계의 오랜 염원이기도 하고 거기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기도 하다.
여기 「민주화」라는 말엔 여러 가지 염원이 담겨 있다. 교육자치, 교육의 정치적 중립, 교권의 존중, 분권과 자율의 신장 등 「민주에 의한 교육」의 일도 포함하고 각급 학교의 교육철학, 교육과정, 교육방법을 민주주의 실현에로 재 지향하는 「민주를 위한 교육」의 일도 포함한다.
이 모두는 궁극 민주주의란 제도이기 전에 먼저 정신의 문제며, 한국교육이 그런 민주정신을 길러서 사회에 「배출」하는 정도에 따라서만 한국의 민주주의도 실질적으로 성숙해갈 것이라는 인식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그러나 민주화의 길은 어느 분야에서나 탄탄대로는 아니다. 요새 봇물 터지듯 요란한 「민주화」라는 말 때문에, 그것이 쉬 곧 오리라고 믿기엔 우리는 너무 「놀란 가슴」을 안고 있다. 8·15의 환희, 4·19의 피눈물, 10·26의 춘사에도 걸었던 민주에의 염원은 세 번 모두 부풀었던 기대만큼이나 환멸이 컸다. 이번이 네 번 째. 압제의 무너짐이 방종으로 이어지고 그 방종이 다시 압제를 불러들이는 악순환에 다시는 이 나라가 걸려들지 않게 정말 슬기로운 민주경륜이 펴지기를 바란다.
다음 교육재정의 획기적인 증액을 기대한다. 교육에 관한 한 이것이 새 정부가 해야 할 가장 긴요한 일이라고 단정하고 싶다. 한국교육은 줄곧 너무 춥고 가난하다. 불어나는 국부 속에서 아직도 이렇게 을씨년스런 공공기관은 학교뿐이다. 우리는 우리 자녀에게 공공적으로는 이토록 잔인하다. 지식전쟁·교육전쟁이 일고 있는 이때 국제비교에서도 너무 뒤진다.
우리가 잘 들먹이는 일본과 비교하자. 근자 한국 대 일본의 몇몇 대략적인 대비는 다음과 같다. GNP 중 공 교육비 비율은 3·3%대 6·0%, 학생 1인당 교육비는 초등학교에서 3백 달러 대, 2천 달러, 대학에서 1천3백 달러대 6천 달러며, 교사1인당 학생 수는 초등학교에서 38대 25, 대학에서 무려 37대 11이다….다른 사정들을 감안하더라도 이 차는 너무 크다. 이런 차가 어떤 교육질의 차, 학습 차, 능력 차로 이어질지 너무나 뻔하고, 이러고도 일본과 겨루고 「선진국」으로 간다는 것은 억지에 불과하다.
70년대 경제발전이 50년대 판자 집에서도 가르친 교육에 크게 힘입었다는 것은 이제 한 통설이다. 매한가지로 2000년대 경제는 지금의 교육에 힘입어야 한다.
그러나 이젠 「판자 집 교육」으로는 안 된다. 교육투자를 늘리지 않고는 2000년대 국제 경제전쟁에 대비하기 어렵다.
예컨대 서해안 시대라고 중공에서 돈벌이할 생각으로 들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잠을 깬」 중국이 머지않아 얼마나 무서운 경쟁자가 될지도 알아야 하며 이에 대한 교육적 대비도 있어야 한다. 여러 어려움이 있을 것을 잘 알지만 획기적인 공 교육비 증액에 어떤 「창조」가 있기를 바란다.
그 다음 대학원문제를 거론 안 할 수 없다. 이른바 두뇌전쟁, 지식산업의 고도기술사회, 정보화 사회에서 최전선 적인 위치에 있는 대학원교육이 한국에선 외형만 팽대하고 속은 너무 한심하다.
가끔 미국에 들러보면 웬만큼 큰 대학의 대학원에는 한국 유학생이 이 삼 사 백 명 씩 「군집」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런가하면 일본인 유학생은 만나기가 힘든다. 이 대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일본은 자타가 공인하는 수준의 석·박사 고급인력의 자체 양성체제를 벌써 종전 전에 갖추었는데 우리는 그것을 아직도 크게 외국에 의존하고 있음을 말한다.
물론 한국에도 대학원이 많고 석·박사도 많이 낸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수준을 한국의 대학자체가 불신하고 있다는 것은 그 교수채용에서 아직도 외국박사소지자를 선호하고 있다는 아이러니가 이를 말한다.
그 이유는 따로 직장 없이 공부만을 전업으로 하는 「전시 제」교육의 미급, 학비·생활비 다 포함하는 「전비」장학금의 태무, 교수증원의 미흡, 연구실습에 필요한 연구비와 연구시설의 부족이다. 이런 「이유」를 원천적으로 시정함으로써 대학원교육이 명실공히 첨단개척의 역할을 해 낼 수 있게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교육철학의 재 지향이라는 어려운 과제에 기대를 건다. 고도 기술사회·정보화사회에 깊숙이 진입할수록 필요한 것은 지식의 기억이나 암기가 아니라 사고력·창의력·상상력이다. 그렇다면 집요 할이 만큼 질긴 우리의 기억위주 교육은 큰 문제다.
기억주의의 정점엔 대학입시가 있고, 대학입시는 권력·금력을 지향하는 출세주의로 가열되고, 그 출세주의 앞에선 모든 교육철학이 무력하게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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