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최민우의 블랙코드

유아인을 보며 언론을 돌아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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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최민우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장
최민우 정치부 차장

최민우 정치부 차장

처음엔 객기려니 했다. 하지만 올라오는 댓글에 일일이 반박하는 건 물론 쫓아다니며 싸움을 불사하는 결기엔 ‘어? 제법인데’ 싶었다. 그렇게 1주일간 가열 찬 백병전이 치러졌다. 최종 승자는? 장담하건대 유아인의 패배를 언급하는 이, 이제 없다.

“애호박으로 맞아봤음? (코 찡긋)”이라는 글에서 비롯돼 유아인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일부 페미니즘 커뮤니티와 벌인 설전은 일찍이 한국 사회에서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우선 유명인 대 불특정 다수의 격돌이었다. 영화 ‘디 워’를 둘러싸고 대중과 불화했던 진중권 이후 10여 년 만이다. 진씨는 평론가였다. 말발로, 논쟁으로 먹고사는 논객이라는 얘기다. 반면 유아인은 연예인이다. 이미지가 절대적이다. 굳이 싸울 필요도 없고, 결코 이길 수도 없거니와, 설사 이겨봤자 상처만 남는다. 게다가 테마는 2017년 휘발성이 가장 큰 ‘여혐’ 아닌가. 가부장적 모순에 일말의 ‘켕김’이 있는 한국 남성이라면 움찔할 수밖에 없다. 그 성역을 유아인은 특유의 감수성으로 헤쳐나갔다.

블랙코드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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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압권이다. “개소리 포장해서 멋있는 척하는 전형적인 한남 짓 그만”이라는 비아냥에 “증오를 포장해서 페미인 척하는 메갈 짓 그만”이라고 맞받아쳤다. 여성 인권 운운엔 “타인의 이해와 존중을 원한다면, 개인에 매몰되지 말라”고 타이른다. 그리고 다음의 일갈로 사실상 종지부를 찍는다. “이 논란은 익명의 집단이 실명의 개인에게 가하는 명백한 폭력입니다.”

직업 탓일 게다. 이 논란을 보며 작금의 언론 환경이 떠오른 건. 무릇 언론이라면 정치 권력에서, 자본에서의 독립이 중요하다고 한다. 과연 그런가. 대통령과 삼성을 맘껏 조롱할 수 있는 세상인데. 이제 언론이, 기자가 눈치 보고 두려워하는 건 단연 군중 세력이다.

디지털 환경일수록 심하다. 군중에 영합해야 클릭 수가 높아진다. 자칫 역행했다간 ‘조리돌림’을 당할 수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논쟁적 이슈를 가급적 피하고, 설사 개입해도 톤을 낮추거나 진영 논리로 보호막을 친다. 약자 코스프레로 기득권을 공격하면 더욱 안전하다. 이런 황량함이 난무하는 여론시장에서 한 젊은이가 온몸 던져 왜곡된 집단의식과 일전을 불사했다.

그러곤 지금 무심한 척 언론에 되묻고 있다. 정론직필을 믿는가.

최민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