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믿을 게 장독대밖에 없었다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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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여섯 살 때 사촌오빠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최모(31)씨. 지난해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주최한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의 증언대에 선 그는 25년 전의 악몽을 떠올리며 북받쳐 말을 잇지 못했다.

눈시울을 적시던 방청객도 그의 마지막 한마디에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해 가슴 아플 땐 장독대에 기대 울 수밖에 없었어요."

용산초등학생 성추행 및 살해 사건 이후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여야는 물론 법무부.경찰.여성가족부 등이 앞다퉈 아동 성폭행 근절 대책을 내놓고 있다. 쏟아져 나오는 대책들은 한결같이 엄벌주의를 외치고 있다. 모든 아동 성폭행 가해자는 구속수사하고 고소 기간 및 공소시효도 없애겠단다. 가해자에게는 전자팔찌를 채우거나 신상을 공개해 취업을 제한하며 집 앞에 성범죄자란 문패를 달자는 안까지 나왔다. 이쯤 되면 한 번 성폭력을 저질렀다가는 영원히 이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성폭력범으로 알려지면 이웃에게 왕따당하는 것은 물론 가족들까지 고개를 들 수 없을 것이다. 취업을 제한하니 먹고살 수도 없고 자녀의 혼삿길마저 막히기 십상이다. 성폭력범이란 문패를 다는 문제도 그렇다. 이번 사건의 경우 용의자의 집 앞에 문패를 달아야 할까, 아니면 신발가게에 달아야 예방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결코 성폭력범을 관대하게 처벌하자는 말이 아니다. 문제는 봇물 같은 대책에 영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호들갑스럽게 쏟아낸 아이디어가 곧바로 정책으로 시행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외국의 제도가 한국 실정에 맞는지, 실효성이 있기는 한지, 다른 범죄와의 형평성 시비에 걸려 위헌소송에 걸리지는 않을지 등 꼼꼼하게 따지고 고려해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법을 고치고 제도를 손질하는 과정에서 당초의 의지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걱정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기에 앞서 반드시 고쳐야 할 수사 및 재판 관행과 사회적 편견이 많다는 점이다. 성추행당한 유치원생 딸을 대신해 경찰에 신고했던 한 부모는 "겁에 질려 있는 아이에게 육하원칙에 맞춰 사실관계를 진술하라는 수사관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아이의 진술을 녹화도 하지 않더니 법정에 또다시 불러내 같은 말을 반복해 시킬 때는 "조용히 묻어둘 걸"하는 후회에 가슴을 쳤다고 한다.

한국에서 성폭력 범죄 신고율은 10%도 되지 않는다. 한 해에 몇 건의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는지 정확한 통계도 없다. 피해자가 용기를 내 신고해도 수사 과정에서 성폭력에 대한 통념에 사로잡힌 수사관에게서 두 번 피해를 보기 십상이다. 성폭력을 가볍게 여기는 재판 관행 때문에 집행유예로 풀려난 가해자가 또다시 피해자를 위협하기도 한다. 게다가 이웃과 주변인은 성폭력당한 것을 성관계를 한 것으로 여기거나 "뭔가 당할 만하니 당했겠지"하는 의심의 눈초리도 숨기지 않는다.

법 집행기관은 성범죄 신고율이 왜 이렇게 낮은지 생각해 보고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 어쩌다가 잡힌 사람에게 가혹한 처벌을 하는 방식만으론 성범죄를 예방하기 어렵다. 신고율이 높아지면 범죄자를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고 처벌도 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신고율을 최소한 30~40%까지는 높여야 엄벌의 의미와 예방 효과도 살릴 수 있다고 한다. 피해자에겐 다음의 사실을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신고를 해야 상담과 함께 심신의 상처도 치료받고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점을.

그래야만 장독대 뒤에 숨은 피해자들이 입을 열지 않겠는가.

문경란 논설위원 겸 여성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