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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비즈] 영업 뛰는 62세 회장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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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타고난 약장수’ 김수지 대화제약 회장이 자사 제품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김형수 기자

지난 17일 오전 7시50분 서울 봉천동 까치고개. 허름한 작업복 차림의 남자가 봉천동 쪽에서 사당동 방향으로 걸어 오른다. 평일 이 시간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이 사람은 대화제약 김수지(62) 회장. 특별한 일이 없으면 늘 봉천동 집에서 남현동 사무실까지 50분을 걸어서 출근한다. 회사 차가 여러 대 있지만"회사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대화제약은 김 회장이 성균관대 약학과 65학번 동기들을 설득해 1983년에 공동 창업한 회사다. 김 회장과 김운장 사장, 고준진 부사장, 이한구 DS&G(계열사) 사장 등 네 명이 대학 동창이다. 그동안 한 마음으로 뭉쳐 회사를 매년 20% 이상씩 키웠다. 그는 "마음대로 게으름을 피울 수 없고, 마음대로 욕심낼 수 없는 것이 동업의 장점이다. 각자가 '회사가 나만의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나눈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동업정신은 회사 경영에서도 그대로 배어난다. 이 회사 영업사원 초임연봉은 학력에 상관없이 2400만원 선. 중견 제약업체 중엔 높은 편이다. 매년 임금 인상은 실적에 따르지만, 한 번 올린 월급은 실적이 떨어져도 깎는 법이 없다. 큰 과실이 없는 한 해고도 안 한다.

요즘 김 회장은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중이다.신약개발이 성과를 거둬 2년 뒤 매출 2000억원이 넘어서면 회사경영에 이바지한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줄 작정이다. "2년 뒤 자문역할로 물러나 후배들에게 길을 터 주자"는 그의 제안에 대해 최근 창업 동지들이 모두 동의했다고 한다. 70억원쯤 되는 개인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도 모색 중이다. 지난해에 모교 연구시설 건축비 8억원을 창업 동지들과 함께 내놓기도 했다.

김 회장은 맨손으로 출발해 자수성가한 만큼 재산에 큰 미련이 없다고 한다. 그는 한국전쟁 때 아버지를 잃고 고등학생 시절 어머니마저 여의었다. 63년 서울대 조선공학과에 합격했지만 돈이 없어 포기했다. 오갈 데 없던 그는 약국을 하던 이모에게서 약 몇 종류를 받아 약장수를 했다. 쌀 한 가마에 3500원 정도였던 시절, 첫 달에만 3만7000원을 벌었다. 그 덕에 뒤늦게 약대로 진로를 바꿔 대학에 다녔다.

그는 지금도 자신을 '타고난 약장수'라고 말한다. 한달에 7~8번 현장 영업에 나서 의사와 약사를 만난다. 주요 거래처의 경조사를 꼭 챙긴다. 영업은 억척스럽게 하지만 의료봉사에 필요한 약은 '달라는 대로' 내준다. 김 회장은 3년 전 봉천동 자택을 3억3000만원에 장만했다. 40평 남짓한 아담한 단독주택이다. 그러나 그가 평생 살아본 집 중 가장 큰 집이다.

?대화제약=170종이 넘는 약을 생산하고 있고 2003년에 코스닥에 상장했다. 최근에 신약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공동 개발 중인 먹는 항암제 파클리탁셀은 임상실험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수백억원이 들어가는 임상실험을 할 처지는 아직 못된다. 약의 판권을 해외 대형제약사에 넘기는 방안 등을 구상중이다.

임장혁 기자 <jhim@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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