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대국의 한심한 억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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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 들어 더욱 거칠어지고 있는 미국의 통상압력 과정을 지켜보면서 화도 치밀지만 한편으론 애처로운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을 뽐내던 미국이 어쩌다가 저 모양이 됐을까 해서다. 별 억지가 다 온다. 한국 때문에 담배에서 5억, 보험에서 20억 달러의 손해를 봤다는 희한한 계산내용까지 압력카드로 내놓고 있는 판이다.
비록 관련업계의 이 같은 숫자 제시가 미국 정부의 공식 확인은 아니더라도 최근 돌아가는 분위기로는 그게 그거다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네들도 이런 식으로 해결될 일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 자신이라는 점을 그들이 모를 리 없다.
무역적자가 쌓이는 게 다른 나라들의 수입규제 때문이 아니라 자기네 상품의 경쟁력이 떨어져서고, 외채와 재정적자가 산처럼 쌓이는 것도 스스로의 방만한 쓰임새 때문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문제는 이 같은 억지 논리가 어느덧 미국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대세로 진행되어가고 있다는 점과 더우기 이 대세를 바로잡을 처방을 어느 누구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스스로조차 안타까와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미국측 태도에서도 드러났듯이 통상압력의 시발이나 진행과정이 자신들의 종합적인 국가이익 차원이라기보다 개별기업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를 원호하는 정치인들 역시 표와 연결된 지역 이익의 옹호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대부분이다.
이 같은 미국의 고민은 우리가 어쩐다고 가셔질 일이 아니다. 미국사회·미국 경제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이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우리에게 더욱 불리할 것은 틀림없다. 요즈음 난리를 떨고 있는 담배·쇠고기·보험시장 개방요구는 이제 시작에 불과한 일일지도 모른다. 미국이 계속 어려워지고 우리형편이 상대적으로 나아지면 저들의 통상압력은 당연히 더해질게 뻔한 노릇이다. 상대가 억지를 부릴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냉철히, 또 차원 높게 장기적으로 대처해 나가야할 때다.@@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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