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설은 언유주얼, 나는 타인과 달라지기 위해 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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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소설집 『뱀과 물』출간한 소설가 배수아씨 #줄거리 요약 어렵고, 현실과 꿈 뒤섞인 단편 7편 모아 #"소설 열심히 안 써…즐기면서 쓴다, 미문도 싫어해"

7년 만에 소설집 『뱀과 물』을 낸 배수아씨. 꿈과 환상이 뒤섞인 작품집이다. 우상조 기자

7년 만에 소설집 『뱀과 물』을 낸 배수아씨. 꿈과 환상이 뒤섞인 작품집이다. 우상조 기자

대체 불가능한 작가. 이런 수식어를 붙여도 좋을 만큼 개성적인 세계를 선보여온 배수아(52)씨가 새 소설집을 냈다. 2012년부터 발표한 단편 7편을 모은 『뱀과 물』(문학동네)인데, 역시, 과연, 같은 감탄사를 부른다. 배씨 소설의 특징으로 거론돼온 온갖 요소들이 치명적인 농도로 녹아 있어서다. 표제작 '뱀과 물'은 그중 압권이다. '문자화된 악몽과 환상'이라고 할 만한데, 그래서 느슨한 독서를 허락하지 않는다. 정신 나간 문답처럼 인물 간의 대화는 논리의 그물을 수시로 빠져나가고, 사건은 한곳으로 수렴되기보다 정처 없이 흩어진다. 무엇보다 인물이 단일하지 않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같은 시공간 안에서 상대가 누구인지 모른 채 마주쳐 부대낀다.
 당연히 배씨 소설은 실감 나는 세상을 보여주거나 하지 않는다. 그의 소설을 읽는 일은 과감하게 인간 심연을 드러내는 작가 정신을 읽는 일이다. 우리는 이성과 합리만큼이나 도취와 당착에 사로잡힌 존재들이다.
 22일 배씨를 만났다. 날씨, 계절, 운동 얘기로 시작했다.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 운동은 집에서 요가를 혼자 한다고 했다.
"요가를 책 보고 유튜브 보고 독학했다. 그래서 내가 하는 건 진짜 요가라고 하기에는 어설픈, 요가를 빙자한 스트레칭에 가깝다. 무슨 강좌에 등록해서 뭔가를 배우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행복하지 않고 결국 안 나가게 된다."

새 소설집 『뱀과 물』에는 모두 7편의 단편이 들어 있다. 어린 시절 얘기가 많이 나온다. 우상조 기자

새 소설집 『뱀과 물』에는 모두 7편의 단편이 들어 있다. 어린 시절 얘기가 많이 나온다. 우상조 기자

-틀에 짜 맞춰진 환경을 싫어하는 편인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날이 대학교를 졸업하는 날이었다. 뭔가를 열심히 하는 건 나랑은 안 어울린다."
-소설은 열심히 쓰지 않나.
"열심히 안 쓴다. 즐기면서 쓰는 편이다."
-작품 쓸 때 고통스럽지 않나.

"아니, 전혀. 힘들면 안 쓰면 된다. 소설 쓰기를 거리 청소와는 다른 정신적 고뇌의 엄청난 여정인 것처럼 표현하는 경우도 봤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글 쓰는 스타일이 궁금해진다. 왠지 굉장히 자유로울 것 같은데.
"나는 글쓰기 계획이라는 게 없다. 내 소설은 치밀하게 플롯을 짜야 쓸 수 있는 스릴러나 장르적인 특징을 가진 게 아니라서 비교적 자유롭게 쓰는 편이다. 일단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으면 며칠이고 생각한다. 스토리를 생각하는 게 아니다. 나는 소설을 쓴다, 그렇게 생각만 하다가 가령 어느 날 꿈에서 인상적인 이상한 문장을 만나면 잠에서 깬 다음 그 문장을 적어뒀다가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 식이다. 그 문장이 소설의 첫 문장일 필요는 없다. 문장이 아닐 때도 있다. 우연히 마주친 어떤 감각이나 사람, 장소가 모티프가 돼 소설이 시작되기도 한다. 그런 마주침을 위한 모드 전환의 과정, 소설의 모티프가 내 몸에 잘 들어올 수 있게 만드는 그런 단계가 필요한데, 그게 찾아올 때까지 몸을 데운다고 할까, 기다리는 거다."

어린 시절은 막 덤벼들기 직전의 야수와 같았다는 문장이 이번 소설집에 나온다. 우상조 기자

어린 시절은 막 덤벼들기 직전의 야수와 같았다는 문장이 이번 소설집에 나온다. 우상조 기자

-이번 소설집 『뱀과 물』의 해설 제목이 '영원한 샤먼의 노래'인데, 아주 틀린 소리는 아닌 것 같다.

"그렇게 말하면 마치 내가 샤먼인 것 같은데…."
-문장을 많이 다듬는 편인가.

"미문(美文)을 싫어한다."
-퇴고는 하지 않나.
"한 번 정도? 많이 다듬지는 않는다. 무계획적이고 즉흥적인 직관에 기대 소설을 쓰다 보니 앞뒤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장면이 가끔 생긴다. 가령 앞에서는 스커트를 입고 있었는데, 나중에 바지를 벗는다든가 하면 그런 건 고쳐야 한다."
-표제작 '뱀과 물'이 특히 난해하다.
"그 소설은 모든 게 불분명하다."
-무엇을 그리고 싶었나.
"주인공이 경험한 모든 시간대가 2차원 평면에 동시적으로 존재하는 상황을 상상한 작품이다. 교사인 김길라는 환상 속에서 과거 엄마 뱃속의 태아가 되기도 하고, 어린 시절 죽어가는 자신을 방치하기도 한다. 그런 작품이다 보니 명확한 인과관계가 있는 서사를 구축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 작품의 모티프는 어떤 거였나.
"소설 제목의 '뱀과 물'은 내 어린 시절의 악몽과 관련 있다. 어떤 이미지도 함께 살리고 싶었는데, 텅 빈 학교를 전학생이 찾아온 장면이었다."
-실제 체험과 관계있나.

"나는 전학한 경험이 없다."
-인생 철학이 담긴 작품인가.
"내 소설에 철학은 없다."
-통찰력이 엿보이는 문장들이 있는데.
"의도한 건 아니다. 인상적인 감각의 세계를 언어로 표현하고 싶었던 거지 인생관이라든가 심오한 사상이나 철학, 그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었다."
-소설은 주로 독일에서 쓴다고 들었다. 낯선 환경에서 소설이 잘 써지기 때문인가.(배씨는 1년에 두 달 정도는 독일에 체류한다. 한국에 있을 때는 번역을 한다)

"그런 이유도 있다. 외국에서는 감각이 새로워진다. 감각이야말로 육체의 옷인데, 굉장히 잘 입어야 한다. 그게 글을 좌우한다. 나는 집에서 소설 쓰는 게 상상이 잘 안 된다."

『뱀과 물』의 표지. 체코 사진작가 프란티셰크 드르티콜의 사진이다. 성숙한 여인 같기도, 앳된 소녀처럼도 보인다. 배씨가 추천해 사용했는데, 노르웨이 화가 뭉크의 작품 '사춘기'를 연상시킨다. 배씨는 "여인이 아니라 소녀로 생각한다"고 했다.

『뱀과 물』의 표지. 체코 사진작가 프란티셰크 드르티콜의 사진이다. 성숙한 여인 같기도, 앳된 소녀처럼도 보인다. 배씨가 추천해 사용했는데, 노르웨이 화가 뭉크의 작품 '사춘기'를 연상시킨다. 배씨는 "여인이 아니라 소녀로 생각한다"고 했다.

-일곱 살 전후의 어린 소녀가 이번 소설집에 많이 나온다.
"언어를 배우기 이전의, 선사시대에 속한다고 할까, 그런 소녀의 감정이나 느낌을 그리고 싶었다."
-그런 시기에 흥미를 느낀 이유는.
"사람이 탄생한다는 것은 알 수 없는 어떤 세계에서 지금 세상으로 오는 거라고 본다. 어린 시절은 그런 탄생과 언어를 배우는 시점 사이에 놓인 시기다. 전생에 대한 기억이 아직 남아 있는 시절에 어린아이가 현실에서 받는 느낌은 어른이 된 다음과는 다를 것이라고 상상했다."
-페미니즘적인 요소도 보인다.
"소설 쓸 때 의도적으로 여자 주인공을 선택하고, 그 주인공을 가족으로부터 분리시킨다. 내 소설의 여성 주인공은 대부분 가족이 없거나 가족으로부터 독립돼 있다. 그래서 가족에 의해 운명이 좌우되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든다. 그걸 페미니즘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여성 서사를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다."
-배수아 소설은 줄거리를 얘기하기 힘들고, 줄거리를 얘기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평도 있다.
"전통적인 방식의 줄거리는 아니지만 나름의 짧은 줄거리는 있다. 슬라이스처럼 끊어지기는 하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이미지들이 소설 안에 있다."
-어떤 인터뷰에서, 소수의 독자라도 작품을 읽어주면 고마운 일이지만, 너무 많이 읽어주기를 바라지는 않는다고 한 적이 있는데.
"나는 소수성을 지향하는 글을 쓰고 싶다. 드물지만 내 소설을 읽고 좋아하는 독자를 만나면 당연히 반갑고 기쁘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글은 평범하지 않은 이상한 글인데, 너무 많은 사람이 좋아한다면, 물론 지금 전혀 그렇지 않지만, 뭔가 모순이잖나. 그런 상황을 경계한다, 그런 얘기를 한 거다."

배씨 소설은 계보를 따지기 어려울 만큼 독특하다는 평가다. 이인성의 작업을 연상시킨다. 우상조 기자

배씨 소설은 계보를 따지기 어려울 만큼 독특하다는 평가다. 이인성의 작업을 연상시킨다. 우상조 기자

-번역 얘기를 해보자. 로베르트 발저나 제발트 소설을 번역했는데, 번역서를 고르는 기준은.
"내가 매혹된 작품들을 번역한다. 제발트가 그런 경우다. 발저는 현지 독문학에서는 거의 카프카와 동급으로 취급되는 작가인데 한국에는 늦게 소개됐다."
-제발트 소설의 어떤 점이 매력적인가.
"그의 글은 픽션인지 산문인지 경계가 애매한데, 무엇보다 언어가 마음에 든다. 처음 그의 작품을 읽었을 때 충격적일 정도로 독일어 문장이 아름다웠다. 그는 치밀하게 연구하고 자료를 모아 글을 쓰는데 플롯이 평범하지 않다. 한 얘기에서 갑자기 다른 얘기로 넘어가고 그러면서도 어떤 감정으로 독자를 휘어잡는 힘이 있다. 가장 좋아하는 건 그의 독특한 글감이다. 무엇에 대해 쓸 것인지를 굉장히 잘 선택하는 것 같다."
-제발트 독일어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살려 번역했다고 생각하나.
"한국어로 된 제발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기계적으로 단어 하나하나 일대일 번역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번역하면 그건 번역가의 문장이지 제발트의 문장이 아니다."
-그런 일대일 번역을 피해야 하는 거 아닌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피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내 제발트 번역은 제발트를 옮긴 배수아의 문장이다. 흔히 번역 과정에서 번역가는 죽고 원문이 살아야 한다고 하는데, 가령 아주 단순한 문장, 나는 학교에 간다, 이런 문장을 번역하더라도 원문 영어 문장과 한국어 문장은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번역은 한 감각을 다른 감각으로 옮기는 일과 비슷하다. 시각을 청각으로 옮긴다든가, 청각을 글로, 음악을 글로 묘사하는 것과 비슷한 작업이다. 그래서 나는 기본적으로 번역을 믿지 않는다. 아무리 똑같이 옮기려 해도 모국어가 아닌 한 번역한 작품은 원작과 다를 수밖에 없다. 한데 나는 그런 번역 과정이 무척 신기하다. 내가 번역작업을 좋아하는 이유는 언어가 바뀌는 연금술적인 변화가 내 안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매혹적이어서다."
-아름다운 외국 문학을 한국 독자와 나누고 싶은 마음도 있는 건가.
"번역가로서 굉장히 강렬한 욕망이다."

배씨는 "소설 쓰기는 기본적으로 즐거운 작업인데 실은 불안감도 크다"고 했다. 우상조 기자

배씨는 "소설 쓰기는 기본적으로 즐거운 작업인데 실은 불안감도 크다"고 했다. 우상조 기자

-당신 소설도 그런 아름다움을 나누고자 함인가.
"내가 번역하는 소설은 이미 검증된 작가들의 작품이다. 나는 그런 검증된 존재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글쓰기는 훨씬 더 모험적이고, 무모하고, 실패를 담보로 한 작업이다. 창작자로서 나는 어떤 지지 기반도 없는 상태에 있다. 나 말고는 아무도 없는 우주의 단독자인 것처럼 느낀다."
-글쓰기는 즐거운데 불안감도 크다?
"그런 모순을 받아들이는 게 작가인 것 같다."
-모순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존재라니, 뭔가 비장하다.
"그러게. 가끔 그런 얘기를 들을 때가 있다. 단독자로서 고독하게 글쓰기를 원한다면 일기장에 쓰면 되지 왜 발표하는 거냐는."
-진짜, 왜 발표하는 건가.
"모순이라니까. 좀 다른 얘기인데, 박상륭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계속 글을 쓰셨는데 절대 발표하지 말라고 하셨고, 사모님이 그 유지를 지키실 거라고 하던데, 나도 언젠가 그럴지 모르지."
-극단적인 창작 태도인 것 같다.
"작가의 신념 깊은 곳에 자리한 암흑과 관련 있는 태도다. 아무도 내 글을 읽지 않고, 이해하거나 사랑하지 않으리라는 점이 인생의 어느 순간에 자명해진다면 글을 써도 발표하지 않을 것 같다. 아직은 미물이어서, 번뇌에 쌓여 있다 보니 발표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거다."

소수의 지지자를 지향하는 작업인데, 언젠가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다. 배씨는 "그런 때가 오면 소설을 써도 발표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우상조 기자

소수의 지지자를 지향하는 작업인데, 언젠가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다. 배씨는 "그런 때가 오면 소설을 써도 발표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우상조 기자

-소설이나 예술은 어떤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나. 오락인가.

"아무도 베케트 같은 사람의 작품을 오락으로 읽지는 않는다."
-그럼, 뭘 배울 수 있는 세미나인가.
"내게 소설은 자신을 타인과 변별하기 위한 도구다. 동물에게는 없는 욕구다."
-번역하는 책 말고 최근 재미있게 읽는 책은.

"좋아하는 책을 선별해서 꼼꼼하게 읽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다독가가 아니다. 사람이 언제까지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좋아하는 책만 읽어도 시간이 모자란다. 요즘은 브라질 여성 작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작품이 좋아 집중적으로 읽고 있다. 독일어나 영어판으로 읽는다. 파스칼 키냐르의 책도 좋아한다. 제발트는 새 작품이 나오지 않으니까(그는 2001년 사망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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