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자 가게 주인이 남긴 걸작 연애소설의 비밀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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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 대한 미스터리 소설을 쓴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다비드 포앙키노스. Catherine Hélie © Editions Gallimard

소설에 대한 미스터리 소설을 쓴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다비드 포앙키노스. Catherine Hélie © Editions Gallimard

앙리 픽 미스터리
다비드 포앙키노스 지음, 이재익 옮김, 달콤한책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미국 서부 밴쿠버에 있는 브라우티건 도서관(www.thebrautiganlibrary.org)은 출판사에서 퇴짜 맞아 출간되지 못한 작품들을 원고 형태로 보관하는 이색 공간이다. 패자부활전이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이런 표현이 어울리는 곳이라고 해도 좋겠다. 괴짜 작가 리처드 브라우티건(1935~84)의 상상력을 현실 세계에서 실현한 결과다.
 소개하는 책은 실존하는 미국 도서관을 프랑스의 가상 도서관으로 옮겨온 장편소설인데, 풍미가 다채롭다. 미스터리와 멜로가 섞여 있고 한국 실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프랑스 상업 출판 생태계를 적나라하게 들춘다. 책과 고독을 사랑해 평생 책에 파묻혀 살았거나 책 쓰기를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면서 수많은 아름다운 책에 관한 이야기다. 보르헤스, 우엘벡, 칼비노, 로베르트 발저, 필립 로스 등 세계문학의 별자리들이 수시로 언급돼 만족감, 도전의식을 부채질한다.
 프랑스 북서쪽 브르타뉴 지방의 시골 마을. 브라우티건 도서관에 열광했던 도서관장 구르벡은 프랑스판 퇴짜 맞은 책들의 도서관을 남기고 죽는다. 유능한 출판 편집자 델핀과 재능 있는 신예 소설가 프레드 커플이 우연히 이 도서관을 찾았다가 원고 더미에서 흙 속의 진주를 발견한다. 『사랑의 마지막 순간들』. 열정적인 연인의 마지막 순간을 러시아 문호 푸시킨의 최후와 중첩시킨 비범한 작품이다. 직업정신, 정의감이 발동한 두 사람은 책의 출간을 추진한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책의 필자가 뜻밖의 인물이다. 원고에 적힌 작가 이름 앙리 픽을 추적했더니 지금은 죽고 없는 동네 피자가게의 주인이었다. 책이나 글과는 담쌓고 사는 것처럼 보였던 픽이 어떻게 왜, 아내와 딸마저 감쪽같이 속이고 걸작을 슬그머니 도서관에 맡겼는지를 밝히는 과정이 소설의 뼈대다. 가십성 토픽은 순식간에 프랑스는 물론 유럽 문단을 뒤흔드는 사건으로 비화한다. 상품성을 귀신같이 눈치챈 언론과 대중이 영합한 결과다.

앙리 픽 미스터리

앙리 픽 미스터리

 저자 포앙키노스는 영화 시나리오도 쓰는 작가라고 한다. 그래선지 막히는 대목이 없다. 빠르게 읽힌다. 잠언처럼 곱씹게 되는 문장들이 곳곳에 박혀 있지만 소설은 결코 무겁지 않다. 문학성을 손해 보더라도 가독성이 우선이라는 생각인 것 같다. 막판 반전도 있다. 독자는 내내 속은 거지만 불만이 크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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