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회사 근처 북창동의 식당에서 ‘테러’를 당했다. 저녁 약속을 위해 단골 식당 문을 열 때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다른 테이블 손님들이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사이 부서 회식 중인 듯한 8~9명의 단체 손님 테이블만 유독 시끌시끌했다.
기어이 일은 터졌다. 술기운에 흥을 주체하지 못하겠다는 듯 콧노래를 흥얼대던 단체 회식 남녀들은 휴대전화 볼륨을 최대한으로 높여 노래를 틀고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고속도로 휴게소 트로트 메들리 수준의 우렁찬 음향, 회식을 주재하는 ‘부장님’의 애창곡인 가수 조용필과 민해경의 1980~90년대 히트곡이 계속 이어졌다. 무지막지한 볼륨과 고성에 식당 분위기는 엉망이 됐다.
15평이 될까 말까 한 좁은 공간에서 벌어진 난데없는 소음 테러, 저녁 식사의 즐거움을 통째로 박탈당한 다른 손님들의 불쾌함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점잖은 체면에 모두 끽소리 한번 못 했고, 절이 싫어 떠나는 스님들처럼 일부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필자에게 정작 충격은 그다음이었다. ‘소음 유발자’들은 일본 관련 일을 하는 회사 직원들인지 익숙한 일본어로 모임을 정리했고, 다른 테이블 손님들의 따가운 시선을 뒤로 한 채 총총히 사라졌다.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며 어려서부터 ‘메이와쿠(迷惑·미혹) 가케루나(폐를 끼치지 마라)’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가르친다는 일본, 그 일본 관련 일을 하시는 분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우리 스스로는 “많이 좋아졌다”고 자평하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나 소음 문제에 우리는 아직 한참 둔감하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데, 얼마 전 지인이 들려준 얘기는 그런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는 내로라하는 최고급 호텔에서 전직 외교부 장관이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는 것을 봤다고 했다. 공공장소에서 스피커폰을 통해 시시콜콜한 사생활을 생중계하는 그 전직 장관의 모습을 보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고 했다. “전직 외교부 장관이라면 대한민국 최고의 매너와 교양을 갖췄을 것”이란 세간의 상식을 그 전직 장관님은 간단히 뒤집어 버리셨다.
얼마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본 방문 때 아베 신조 총리가 보여준 밀착외교와 일본인들의 환대를 놓고 한국에서는 말들이 많다. “일본인들은 원래 강한 자에게 잘 보이려 호들갑을 떤다”며 깎아내리는 이들까지 있다. 위안부와 독도 문제에서 드러난 일본의 몰염치는 꾸짖더라도 그들이 잘하는 건 평가하고 우리를 돌아보는 거울로 삼는 게 더 지혜롭지 않을까. TV만 켜면 모두가 ‘일본, 일본’을 말하고 일본 관광도 엄청나게 간다니 하는 말이다.
서승욱 국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