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볼 때 지진만 안 났으면" 수능 D-1…예비소집 다시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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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이 날 때는 감독관이 퇴실하라고 하면 해야 합니다. 아니면 시험 포기로 간주해요. 큰일 납니다”

22일 오후 경북 포항시 북구 포등학교 운동장에서 수능 하루 전 예비소집일을 맞아 학생 400여명이 교육을 받기 위해 모였다. 최규진 기자

22일 오후 2시 경북 포항시 북구 포항고등학교 운동장 계단. 여섯개의 계단 위로 학생 400여 명이 모였다. 수능 하루 전 유의사항을 안내하는 예비소집 자리였다. 지난주에 이어서 두 번째다. 학생과 교사들은 예비소집이 예정됐던 강당 대신 운동장을 택했다. 지난 15일 지진 이후 일주일째 여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차태훈 교무부장(47)은 "학생들이 무너진 강당에 들어가기가 무섭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수능 D-1' 지진 일주일 만에 다시 예비소집 #"시험 도중 지진나도 감독관 지시따라 대피" #학생·학부모 "수능 당일 시험장 안전 우려"

이날 학생들은 본인의 실제 수능 시험장보다 지진 시 이동해야 하는 예비 시험장이 어딘지에 관심을 가졌다. 수능 당일 오전 8시 10분 전에 강진이 발생할 경우 학생들은 전세 버스를 타고 예비 시험장으로 이동해야 한다. 일부 학생들은 예비시험장의 위치를 몰라 난감하다는 반응이었다. 포항고 3학년 5반 최정민(19) 학생은 "예비시험장을 지금에야 확인했다. 오늘 밤에는 근처의 숙소를 알아봐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날 경북 포항시 북구 포항고등학교에는 재학생과 졸업생 등 400여명의 학생들이 모여 대체시험장과 예비시험장 등의 유의사항을 안내받았다. 최규진 기자

교사들은 일주일 만에 바뀐 예비소집 교육 내용을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데 집중했다. 앞서 나눠준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험생 유의사항’ 책자에 더해 종이로 된 ’포항지역 수험생 유의사항 안내문’을 나눠줬다. 여기엔 입실시간 이후 벌어진 지진의 체감 정도에 따른 수험생의 상황별 조치계획과 행동요령이 담겨 있었다. 시험 도중 지진이 발생할 경우 반드시 감독관의 지시에 따라 대피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학부모들은 학생들이 시험을 제대로 치르지 못할까봐 걱정했다. 교문 앞에 모인 학부모들은 지나가는 자녀들을 불러 세우며 일일이 손을 잡았다.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도 좋지만, 시험 도중 지진이 나면 먼저 대피하라는 당부였다. 유성여고에 재학 중인 딸을 둔 정은경(47)씨는 "시험 당일 강진만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심리적으로 얼마나 동요가 크겠느냐"고 걱정했다.

22일 오후 수능을 하루 앞두고 서로 격려하는 포항고 3학년 1반 허진우(왼쪽)군과 김광군. 최규진 기자

학생들은 오후 4시가 넘어서 실제 시험장으로 이동했다. 수능 하루 전 마지막으로 실제 고사장을 사전 답사하기 위해서였다. 일부 학생들은 대체 시험장으로 향하는 동급생들을 격려하며 악수를 건넸다. 대부분 이전보다 차로 50분 거리로 시험장을 옮겨간 학생들이다. 3학년 1반 김광 학생(19)은 “친구들이 너무 힘들더라도 지치지 말고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예비소집이 끝난 학생들을 불러 마지막 응원 메시지를 건넸다. 담임 교사들은 각 반 학생들을 물러남은 수험표를 나눠주며 어깨를 두드렸다. 일주일 전 학생들에게 미처 건네지 못한 마지막 준비물이다. 학생들은 교사를 껴안으며 손을 모아 각 반의 구호를 외쳤다. 포항고 3학년 4반 담임 도향숙(54) 교사는 “부디 안전하게 돌아왔으면 좋겠다. 지진도 당당히 이겨낸 만큼 우리 아이들이 분명 좋은 결과를 낼 거라 믿는다”고 말했다.

포항=최규진·백경서 기자 choi.ky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