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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괴는 20년 전과 변한 것 없어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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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KAL기 폭파 범 김현희는 유족 및 국민이 용서해준다면 극형을 면케 해야 합니다. 그녀는 나처럼 북괴 체제의 하나의 부속품으로 움직였을 뿐입니다』
20일 하오, 20년 전 자신이 침투했던 코스 일부를 우리 군과 함께 직접 답사하고 서울 강남구 아파트로 돌아온 김신조씨(47)는 최근의 KAL기 폭파사건부터 얘기를 시작했다.
『나는 다시 태어났으나 저들은 변한 게 없다』고 북괴의 남침야욕을 지적한 김씨는 1· 21 사태의 의미를 다시 깨우치려는 뜻에서 침투루트를 답사했노라고 했다.
『귀순당시는 다소 어렵긴 했어도 국민의 반공의식이 투철하고 단결이 잘된 것 같았는데 지금은 생활이 나아졌지만 북괴의 위험성을 망각하는 것 같다』고 20년 전과 오늘의 우리사회를 비교했다. 올림픽에 소련·중공·동구권이 참가한다니까『일부 정치인들까지 화해 무드에 젖어 저들의 실체를 잊은 것 같다』고 김씨는「공산권 전문가」답게 꼬집는다.
아시안게임 때의 김포공항 폭탄테러와 이번의 KAL기 사건을 상기시키면서 김씨는「마유미」사건의 교훈으로 앞으로 북괴는『폭파 등의 목적을 달성하고 철저히 함께 죽는 방법을 써 공작을 은폐하려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말씨까지 완전한 서울시민이 된 그는 서울 강남구 아파트에 살고 있다. 펜팔 연애 끝에 결혼한 최정화씨(40)와의 사이에 고1 딸(17)과 중2 아들(15) 남매를 두었다. 큰딸의 이름이 말해주듯(남쪽의 희망) 이 땅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다니던 직장과 사업을 그만둔 채 몇 년 전부터 반공연사·신앙간증 전도사로 나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때는 죄책감으로 술에 빠지기도 했지만 79년 위암을 선고받은 아내가 기독교에 귀의한 뒤 나은 것을 계기로 독실한 기독교인이 됐다.
72년 귀순용사로부터 부모가 처형되고 동생들이 행방불명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차라리 내가 죽었더라면…』하는 통한에 몸부림쳤다고 회상한 그는 아직 김현희를 만난 적은 없지만 지령에 의해 기계처럼 움직인 그녀의 선처를 다시 한번 역설했다. 김현희가 행방불명된 세 누이동생처럼 느껴진다고도 했다. <최간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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