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한국의 퀄컴" … 지씨티 세미컨덕터 이경호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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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3차 투자금 3800만 달러를 모으려던 참에 9.11 테러가 터지면서 돈줄이 확 막혔어요. 사업하는 사람 중에 비관자살하는 사람이 왜 많은지 알겠더라고요."

휴대전화용 반도체 제조업체인 지씨티(GCT)세미컨덕터의 이경호 대표(37.사진)는 가장 어려웠던 때가 언제냐는 질문에 고개부터 설레설레 흔들었다. "안된다"는 미국 금융업체들을 설득하다 지쳐 반도체 제조업체인 내셔널세미컨덕터 창업자와 직접 만나 담판을 지어 8개월 만에 투자를 이끌어냈다.

GCT의 주력 품목은 전파를 잡아 증폭하는 기능을 하나의 칩으로 해결한'CMOS RF 모듈'이다. 두 개 내지 세 개의 칩셋을 사용하는 일본.대만의 경쟁사들보다 원가가 낮지만 가격은 두 배 이상을 받는다고 한다. GCT 제품을 쓰지 않으면 슬림형 단말기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가 GCT 설립에 나선 것은 서울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2000년이다. 재미교포 데이비드 리씨와 함께 미국에'실리콘이미지'사를 세운 서울대 정덕균 교수가 그의 은사다. 정 교수 일을 돕는 과정에서 실리콘 밸리 시스템에 익숙해지면서 엔젤투자자를 모아 자신의 회사를 꾸렸다. GTC는 미 본사가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한국 자회사가 연구개발에 나서는 형태를 갖췄다. 처음에는 중국의 휴대전화 방식인 PHS 표준에 맞는 RF모듈을 개발했다. 지난해 5000만 대가 팔린 PHS 휴대전화 가운데 40%의 시장점유율로, 23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에는 DMB용 RF모듈 개발에 성공해 한국과 일본의 주요 휴대전화 제조업체에 납품한다. "한국의 퀄컴이 되는 것이 꿈"이라는 이 대표는 "퀄컴도 CDMA 방식의 원칩 모듈을 만들지 못한다"며 GCT의 기술력을 자랑했다. DMB 폰이 인기를 끌면서 올해에는 4000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한다. 2008년까지는 1억 달러 매출을 달성하는 게 목표다.

이 대표는 한국 벤처기업이 살아남는 길은 "2년 이상 앞선 기술로 다른 곳에서는 만들지 못하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같은 성능의 제품을 반 값에 만들어내는 대만업체와 가격 경쟁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중소기업들이 기술력은 좋은데 글로벌 마케팅에 뒤지는 게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특히 세계적인 제조업체일수록 한두가지 반짝하는 아이디어 상품보다 앞으로 5년 이상 꾸준히 기술 수준이 앞선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데, 이런 면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한국의 1세대 벤처들이 어려움을 겪은 데 대해 "경영 투명성의 문제"라면서도 벤처를 보는 국내의 시각 역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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