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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파 출판사의 도서전 참가 논쟁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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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8호 29면

공감 共感

예테보리는 스웨덴의 서쪽 관문으로 상공업과 무역의 중심인 항구이자 문화와 예술의 도시다. 매년 9월 여기서 도서전이 열린다.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가장 큰 문화 행사다. 작가·정치인·사상가와 노벨상 수상자들이 참가해서 세계의 어느 도서전보다 잘 짜인 학술 프로그램을 자랑한다. 이 도서전을 7년 동안 이끌어 왔던 마리아가 전 세계의 도서전 감독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가 예테보리 도서전의 감독을 사임한다는 내용이어서 뜻밖이었고 깜짝 놀랐다.

스웨덴 예테보리 도서전 이끈 감독 #극우파 참가 논쟁 격심해지자 사임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서도 논란 #표현의 자유 허용범위 성찰 계기

그가 힘겹게 밝힌 사임 이유는 극우파 출판사의 도서전 참가를 둘러싼 논쟁이었다. 472일 동안 7000여 개의 신문 기사와 칼럼을 통해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고 했다. 그가 도서전의 얼굴을 맡고 있는 한 논쟁이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사임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한다고 했다. e메일을 받은 도서전 감독들은 내년 컨퍼러스에서 정치적인 영향력과 도서전의 운영에 관련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고 약속했다.

사실, 이는 예테보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책 잔치라고 불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벌어졌다. 올해 한국관을 운영했던 4.1관의 위층, 4.2관에서 열린 작가와의 대화에 극우 성향의 안타이오스 출판사 작품이 선정된 것이 화근이었다. 소개된 작품은 좌파를 비꼬는 내용인 『좌파와 살아가기』. 그 작품을 소개하는 행사에서 격렬한 항의와 몸싸움이 일어났다. 경찰이 현장을 정리했고 정해진 프로그램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이 출판사의 대표 큐비체크는 극우파 활동가이면서 이론가로 유명하다. 올해 독일 총선에서 92석을 얻어 제3당이된 독일대안당(AfD)의 당수 뵐른 훼케의 측근이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직접 찾은 훼케는 이 충돌이 일어난 자리에서 미움과 이데올로기의 뿌리가 깊은 좌파와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건은 지나갔지만 시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된 저자 강연회에 대한 설왕설래는 계속됐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대표인 유르겐 부스는 표현의 자유 때문에 이런 행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도서전은 살만 루시디가 이슬람의 공적이 되었을 때도 그 책을 전시했는데, 정치적 입장 때문에 『좌파와 살아가기』를 도서전에서 배제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도서전, 그리고 출판계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출판의 자유’다. 출판의 자유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와 동전의 양면이다. 그래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측에서 절대적인 가치로서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치가 저지른 악행을 몸소 경험한 독일에서 파시즘은 사상이 아니라 범죄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극우파를 허용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유럽 전역에서 보수색이 짙어지고, 곳에 따라서는 극우파가 정치적인 세력으로 등장하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사직서를 내고 여행을 떠난 예테보리 도서전 감독 마리아에게 답장을 썼다. 마리아, 당신이 보낸 편지를 받고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지고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책을 만들고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그것으로 인해서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은 곳으로 바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죠. 책을 통해 전달되는 지식들이 만든 풍요와 책을 통해 전파되는 다양한 생각들이 어우러져 만드는 민주주의적 가치들을 훼손하는 것들을 허용할 수 없습니다. 생각과 표현의 자유를 핑계로, 실제로는 자유와 신념을 지킬 수 없도록 만드는 것들에 반대하는 당신의 결정을 지지합니다. 당신의 사직에 놀랐고 화도 났지만 전 세계에서 도서전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우리가 이런 일을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들어 주어서 고맙기도 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내년 예테보리에서 만나서 당신의 용기 있는 결정이 미친 영향에 대해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일우
이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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