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준 양 유괴 경찰수사 갈팡질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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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혜준 양은 살았는가 죽었는가.
범인 함효식은 투신자살한 것인가 자살을 위장, 잠적한 것인가.
또 한사람의 공범은 과연 어디 있는가.
14일로 사건 발생 42일, 공개수사 8일째로 접어드는 서울삼전동 원혜준양(6) 유괴사건은 해결의 실마리가 잡힐 듯 잡힐 듯 여전히 미궁인 채 경찰수사의 무능·추태만 갈수록 노출돼 최근 재연된 박종철 군 고문치사 은폐시도 물의와 함께 국립경찰의 신뢰와 권위를 바탕에서부터 흔드는 또 다른「사건」으로 확대되고 있다.
당초부터 무성의와 허점 투성 이었던 경찰수사는 공개수사에 들어서며 타성 화된 체질에 따라「무슨 수를 쓰든 책임은 면하고 공만 내세우려는」진상왜곡·날조·허위보고가 꼬리를 물어 수사를 오리무중상태로 끌어가고 있다.
사건공개 후 수사본부에는3백여 통의 제보전화가 걸려오는 등 시민들의 관심과 협조가 밀려들었지만 경찰은 건성수사로 실수와 눈가림만 계속해온 인상.
경찰은 범인의 협박전화를 탐문 추적하던 중 지난해 12월17임 범인으로 보이는 20대청년이 동방플라자 안의 상업은행 현금인출기부근에 나타난 것을 쫓다 이 청년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바람에 놓치고 말았다.
또 경찰은 지난 9일 시민의 제보로 손안에 굴러 들어온 범인 함씨를 경찰서로 연행도중 놓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범했다. 그러고는 문책을 면하기 위해『범행증거가 없어 함씨의 아버지(58)로부터 신원보증서를 받고 신병을 인계했다』고 상급기관에 어처구니없는 허위보고를 했다.
이 때문에 함씨의 유서가 발견된 지난 12일하오 혜준양의 어머니 서희옥씨(30)는 수사본부에 가『육성을 통해 범인으로 지목해줬는데도 다잡은 범인을 왜 놓쳤느냐』고 울부짖으며 항의했다.
점입가경으로 경찰은 13일 범인 함씨의 공범으로 지목되던 임모씨(26)가 서울 상도동 집에서 사촌누이(29)를 통해 경찰에 자수했음에도『오모 경사 등 2명이 잠복근무 중 귀가하는 임씨를 검거했다』고 또 거짓말을 했다가 임씨의 무혐의가 밝혀지면서 거짓보고까지 들통났다.
경찰수사의 무능·무성의는 여러 곳에서 나타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한 성문·필적감정용 자료는 경찰이 가져온 것은 감정이 어려운 극히 소량의 조잡한 것인데 비해 가족들이 가져온 필적자료와 녹음테이프는 전문가 수준의 좋은 상태에 충분한 양이었다.
공개수사가 사건발생 30일 만에야 시작됐다는 것도『너무 늦었다는 지적. 가족들의 공개수사 재촉에도 경찰은 이를 계속 미루다 가족들이 참다못해 혜준양을 찾는 전단을 만들어 뿌리려하자 마지못해 공개수사에 나섰다. 이제 와서 자신들의 무능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 경찰을 비난해도 할말이 없게됐다.
가장 중요한 혜준양의 생사를 놓고는 낙관과 비관이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사건해결의 첫 과제는 경찰의 수사자세를 근본적으로 바로잡는 일이다. 적어도 거짓보고가 서슴없이 행해지고 통용되는 풍토에서는 수사도 건성일수밖에 없다. 경찰내부의 「범죄」부터 척결하고 나야 사회의 범죄를 해결할 수 있다면 지나칠까.<박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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