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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공일 칼럼

한·중 관계의 미래: 도전과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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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사공일 중앙일보 고문·전 재무부 장관

사공일 중앙일보 고문·전 재무부 장관

국제 정세에 어두운, 강대국 주변 약소국의 비애를 다시금 뼈저리게 느끼게 한 영화 ‘남한산성’을 봤다. 그 엄동설한에 온갖 고난과 위험을 무릅쓰고 조선의 남한산성 턱밑까지 온 청 태종의 주목적이 조선을 정복하거나 전리품을 챙기는 게 아니라 중국 특유의 지역 패권주의 질서 유지를 위한 주변국 길들이기였다는 것을 재조명해준 뜻깊은 영화였다.

중국 19차 당대회, 지역 패권 넘어 #세계 질서 이끌겠다는 의지 천명 #미래 패권국 중국과 공영하려면 #대중국 경제적 레버리지 키우고 #주변 강대국 외교관계 강화해야 #"삼전도의 비극" 되풀이 않는 길

최근 중국 제19차 공산당 전국대표회의에서 중국은 종합 국력과 국제영향력 면에서 세계 최강국이 되겠다는 장기 목표와 구체적 로드맵을 세계에 공표했다. “그 어떤 나라도 중국이 자신의 이익에 손해를 끼치는 쓴 열매를 삼킬 것이라는 헛꿈을 버려야 한다”는 국제적 경고도 잊지 않았다. 덩샤오핑(鄧小平)의 도광양회(韜光養晦)를 폐기하고 지역 패권을 넘어 세계 질서를 이끌어 나가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이미 우리는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도입과 관련한 중국의 각종 경제보복 조치를 경험한 바 있다. 문제는 앞으로 제2, 제3의 유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러한 초강대국 중국의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서 우리의 지정학·지경학적 취약성을 극복하는 한편 중국 경제의 ‘이웃 효과’를 계속 활용하며 중국과 공존·공영하기 위해 필요한 장·단기 전략은 무엇인가.

우선 경제적 레버리지를 최대한 키워야 한다. 이번 사드 관련 보복도 관광 등 상품교역 이외 분야에 치중됐던 것은 우리의 대중국 수출 대부분이 중국의 수출용 중간재였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이러한 대중국 경제 레버리지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이미 중국은 ‘메이드 인 차이나 2025’ 전략으로 주요 부품과 제품의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예를 들면 스마트폰 칩 수요의 3분의 1 이상을 2025년까지 자국산으로 대체하겠다는 목표도 있다. 이를 위해 중국은 미국과 유럽의 많은 우수 기술 인력을 파격적 대우로 유치하고 기술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의 연구개발(R&D) 지출은 내년에 미국을 앞설 것으로 전망된다.

사공일 칼럼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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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심각한 것은 현재 중국은 제4차 산업혁명에서 우리보다 앞서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 MIT대학의 어느 기술 관련 전문 잡지는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 요소인 인공지능(AI)의 미래는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논평한 바 있다. 중국의 정보기술(IT) 부문 기업들이 정부의 검열(주로 비경제적 요인에 따른)에만 협조한다면 어떤 혁신활동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 중국 경제 성장의 새로운 원동력이 되는 IT 중심의 소위 신경제 분야 약진은 바로 이런 좋은 여건하에서 이룩된 주로 민간기업의 혁신 활동에 따른 것이다. 우리 기업과 정부, 그리고 정치권과 국회는 이런 중국을 보며 정신 바짝 차리고 앞날을 설계해야 한다.

다음으로 일본·러시아 등 주요 주변 강대국들과의 외교관계를 강화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중국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이 재확인 한 바와 같이 한·미 동맹의 굳건한 기반 위에서 강화해 나가야 한다.

아울러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과 인도, 중앙아시아와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 신흥국과의 교역을 늘리는 한편 우리의 개발 경험을 공유하는 등 여러 가지 물적·인적 지원을 통해 이들 나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는 롤 모델의 나라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 한다. 아세안 방문 시 문 대통령이 선언한 신(新)남방정책은 시의적절한 것이었다.

세계 최대 경제대국과 이웃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웃 효과’와 함께 더욱 긴밀한 한·중 협력을 통해 윈윈 할 기회도 많다. 급속한 도시화와 함께 각종 서비스, 고부가가치 제품 소비를 이끌게 될 중국의 중산층은 크게 늘어나고 있다. 온라인 쇼핑에 따른 소비혁명으로 중국의 e상업은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으며 현재 모바일 결제액은 미국의 11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현재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 포함되지 않은 이들 서비스 부문 협상과 함께 한·중 FTA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개정으로 상호 윈윈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관광·보건·의료·교육 분야뿐 아니라 우리가 앞서 시행하는 국민연금·의료보험 등 공공서비스 분야의 협력 가능성도 크다.

쓰라린 ‘삼전도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역사적 노력에 모두가 한마음으로 동참해야 한다.

사공일 본사 고문·전 재무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