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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5·18 가마니 시신' 옮겼나…광주교도소, 유해 안나와

중앙일보

입력

1980년 5월 계엄군에 의해 숨진 광주시민들의 시신. 중앙포토

1980년 5월 계엄군에 의해 숨진 광주시민들의 시신. 중앙포토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행방불명된 시민들이 암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옛 광주교도소에 대한 1단계 발굴 결과 유해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옛 광주교도소는 80년 5월 당시 사라진 희생자들을 계엄군들이 암매장한 장소로 유력하게 지목돼온 곳이다.

1단계 구역 발굴에선 '암매장' 발견 안돼 #광주교도소, 사망자 28명중 11구만 수습 #계엄군 지휘관 “가마니로 시신 2구씩 매장” # 진술·약도 있는데도 37년간 진상규명 외면 #"암매장 발굴 범위와 방법 등 재점검" 예정 #“좁은 방송차에 30명 태워 2~3구 밟혀죽어”

5·18기념재단은 9일 “나흘 동안 진행된 옛 광주교도소 암매장지 1단계 발굴조사 결과 암매장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광주광역시 북구 옛 광주교도소 전경. 5·18 당시 암매장 장소로 유력하게 추정됐던 곳이다. [뉴시스]

광주광역시 북구 옛 광주교도소 전경. 5·18 당시 암매장 장소로 유력하게 추정됐던 곳이다. [뉴시스]

교도소의 북쪽 담장 주변 전체 115m 길이의 조사 지역 가운데 1단계(40m) 구간에 대한 발굴이 성과 없이 마무리된 것이다. 이번에 발굴이 이뤄진 교도소 북측 담장 바깥쪽 길이 300m 중 길이 115m, 폭 3~5m 구간은 가장 유력한 암매장지로 지목된 장소다.

옛 광주교도소는 80년 5월 당시 행불자들이 암매장된 장소로 지목돼왔다. 5·18 당시 보안대 자료에는 옛 교도소에서 억류당한 시민 28명이 숨졌는데 이중 시신 11구만 임시 매장된 형태로 발굴됐다.

지난 8일 오후 광주광역시 북구 옛 광주교도소 북측 담장 인근에서 80년 5월 계엄군이 교도소 내 희생자들을 암매장한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대한 유해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5·18기념재단]

지난 8일 오후 광주광역시 북구 옛 광주교도소 북측 담장 인근에서 80년 5월 계엄군이 교도소 내 희생자들을 암매장한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대한 유해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5·18기념재단]

5·18기념재단과 발굴 총괄을 맡은 대한문화재연구원은 지난 6일부터 해당 구간에서 교도소 생활쓰레기와 배관 다발 등 과거 굴착 이력만을 확인했다. 재단 측은 대한문화재연구원과 암매장 발굴조사 범위와 방법 등을 재점검할 예정이다.

발굴단은 당초 1단계 작업 구간 위쪽 40m 구간을 다시 10m씩 나눠 2단계 발굴에 착수할 예정이었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은 뒤 방향을 결정키로 했다.
김양래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5·18 당시 행방불명자의 시신이 암매장됐다가 다른 장소로 옮겨졌을 가능성 등을 열어두고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5·18 당시 계엄군에게 끌려가는 광주시민들. 중앙포토

5·18 당시 계엄군에게 끌려가는 광주시민들. 중앙포토

이번 발굴은 1980년 5월 당시 계엄군 지휘관이던 3공수 김모 전 소령이 작성한 약도와 진술 조서, 시민 제보 등을 토대로 이뤄졌다. 김 전 소령은 1995년 5월 29일 서울지검에서 ‘관이 없어 가마니로 시신 2구씩을 덮고 묻었다’고 진술했다.

그는 또 ‘시신 12구 중 전남대에서 광주교도소로 옮겨진 시신 2~3구는 밟혀 죽은 시위대였다’는 진술도 남겼다. 당시 시신들이 밟혀 죽은 이유에 대해서는 ‘광주교도소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비좁은 방송차량에 30여 명의 시위대를 태웠기 때문에 힘이 없는 시위대를 쓰러져 밟히고 질식해 죽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북쪽 담장 주변에서 5·18 행방불명자 암매장 추정지역에 대한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북쪽 담장 주변에서 5·18 행방불명자 암매장 추정지역에 대한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5·18 당시 광주에 파견된 제3공수여단 본부대장이던 그는 시신을 암매장한 곳이 담긴 약도도 남겼다. 5·18 당시 사망한 시민군을 암매장한 상황이 계엄군 지휘관의 진술에 의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그의 진술에는 ‘교도소 담장에서 3m 정도 이격해 매장했다’ ‘전남대에서 방송차량을 이용해 시신 3구를 교도소로 옮겼다’는 등 구체적인 내용이 담겼지만 사실 확인은 이뤄지지 않았다.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북쪽 담장 주변에서 5·18 행방불명자 암매장 추정지역에 대한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 북쪽 담장 주변에서 5·18 행방불명자 암매장 추정지역에 대한 발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5·18사적지 22호인 옛 광주교도소는 5·18 당시 시민군과 계엄군의 주요 격전지이자 시민군들이 고문을 당했던 장소다. 5·18 당시 이곳에는 3공수여단과 20사단 병력이 주둔한 곳이어서 유력한 암매장지로 지목돼 왔다. 5·18기념재단이 김 소령이 증언한 내용의 신빙성을 높게 본 것도 그가 당시 3공수여단 본대대장이어서다.

광주광역시=최경호 기자 ckhaa@joongang.co.kr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게 무릎꿇은 시민. [사진 5·18기념재단]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게 무릎꿇은 시민. [사진 5·18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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