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전 사라진 1840억 명화 중고장터서 헐값에 나오자 FBI 수사

중앙일보

입력

윌렘 데 쿠닝(1904~1997년)의 유화 여인 오커(Woman Ochre)

윌렘 데 쿠닝(1904~1997년)의 유화 여인 오커(Woman Ochre)

지난 1985년 11월 29일 추수감사절 이른 아침. 미국 애리조나대학 미술관에 걸려있던 그림 한 점이 사라졌다. 폐쇄회로(CC)TV가 없던 당시 칼로 뒷 부분이 정교하게 잘린 자국만 남긴 채 사라진 이 그림은 추상표현주의 미술의 대표적 화가인 윌렘 데 쿠닝(1904~1997년)의 유화 여인 오커(Woman Ochre)다. 현재 가치는 1억6500만 달러(약 1840억원)로 추정된다.

당시 미국 연방수사국(FBI)가 범인을 잡기 위해 수사에 나섰으나 결국 잡지 못하고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최근 여인 오커는 한 중고장터에서 다른 골동품과 함께 떨이로 2000달러(약 220만원)에 판매되려 했다. 한 고객이 여인 오커의 진가를 알아채면서 그림의 진가가 드러났다. 이 고객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서 그림을 긁어 보려 했다. 중고장터 상인인 데이비드 어커는 인터넷에 검색해 도난 사실을 알게 됐고, 애리조나대학 미술관에 연락해 감정을 요청했다. 이후 데이비드는 그림을 미술관에 반환했다.

애리조나대학 미술관에 걸린 여인 오커 액자. 도난당한 기록을 유화 대신 전시했다. [AP=연합뉴스]

애리조나대학 미술관에 걸린 여인 오커 액자. 도난당한 기록을 유화 대신 전시했다. [AP=연합뉴스]

 FBI는 누가 중고장터에 이 그림을 내놨는지 재수사에 들어갔다.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NBC 방송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텍사스주 휴스턴에 사는 론 로즈먼이 이 그림을 내다 판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고모와 고모부가 사망한 뒤 뉴멕시코 주에 있는 자택 정리를 맡게 됐고 이 과정에서 집에 남겨진 그림과 골동품들을 한꺼번에 중고장터에 내놨다”고 말했다. 결국 범인은 이미 세상을 떠난 고모와 고모부인 리타와 제리 알터 부부로 밝혀졌다.

 로즈먼은 “이 사실을 FBI를 통해 처음 들었을 때 마치 달리는 자동차 앞으로 사슴이 뛰어든 기분이었다”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했던 고모와 고모부가 도둑질을 했을 리 없다”며 말했다. 이어 “두 분은 명문대학을 졸업한 부유한 교육자 출신으로 은퇴 후 세계여행을 하며 여생을 보냈다”고 밝혔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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