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버스동원 vs 진보 치고빠지기…세대결장된 평택미군기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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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평택 미군기지 앞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환영하며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김민욱 기자

7일 평택 미군기지 앞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환영하며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김민욱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내외가 7일 국빈 방문 첫 일정으로 찾은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Camp Humphreys)' 앞은 보수·진보성향 단체의 대결장이었다. 보수 쪽은 관광버스까지 대절하며 세를 과시했고, 진보 쪽은 집회를 짧게 하고 해산하는 '치고 빠지기'식의 전략을 썼다.

트럼프 대통령 방한 첫 일정지 평택 미군기지 #보수단체 등 건 환영 현수막만 30여 개 빼곡 #보수단체 회원 1800여명 모이며 세 과시 #진보단체 20여명 맞은편서 'NO TRUMP' 외쳐 #충돌 우려해 치고 빠지기 식 전략 사용한 듯

이날 오전 9시쯤 평택 캠프 험프리스 정문. 4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 길가에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평택시 방문을 열렬히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무려 30여개. 평택지도자연합·팽성상인회 등 지역 주민들과 전국구국연합회·대한애국당·재향군인회 등 보수성향 단체 회원들이 내건 것이다.

7일 평택 미군기지 주변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최모란 기자

7일 평택 미군기지 주변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최모란 기자

한쪽에 주차된 자유대한호국단 차량 스피커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을 환영한다"는 내용의 녹음된 영어 연설이 연신 흘러나왔다.

20분 후 비상등을 켠 검은색 대형 경호 차량 20여대가 험프리스 부대 안으로 들어갔다. 보수 성향단체 회원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열렬히 환영했다. "위 러브 트럼프" "위 러브 트럼프" 구호도 나왔다.

7일 오전 평택 캠프 험프리스 부대로 들어가고 있는 경호차량. 김민욱 기자

7일 오전 평택 캠프 험프리스 부대로 들어가고 있는 경호차량. 김민욱 기자

이창호 전국구국연합회 연합정책단장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환영하기 위해 왔다"며 "트럼프의 방한을 계기로 한미동맹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잠시 뒤 보수단체 회원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연신 도착했다. 군복을 입은 회원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캠프 험프리스 정문 앞 왕복 4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선 진보 성향인 사드반대 탄저균추방 평택시민행동 회원 20여명도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NO WAR', 'NO TRUMP'라는 글이 적힌 붉은색 종이를 들고 "한반도 전쟁위협을 높이는 트럼프의 방한을 반대한다"고 외쳤다.

7일 평택 미군기지 앞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반대하는 평택지역 시민 단체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최모란 기자

7일 평택 미군기지 앞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반대하는 평택지역 시민 단체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최모란 기자

보수·진보 단체들은 부대 정문을 바라보고 각각 우측과 좌측으로 나뉘어 '환영'과 '반대'를 동시에 외쳤다. 보수단체 일부 회원들은 진보 단체 회원들을 향해 “XXX들” 등 거친 욕설을 하기도 했다. 일부 회원간 고성이 오갔지만, 다행히 양측의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경기 평택경찰서 등에 따르면 이날 캠프 험프리스 주변에 신고된 집회는 보수단체의 가두행진까지 포함해 모두 6건이다. 진보단체의 집회신고는 단 한 건으로 확인됐다.

7일 평택 미군기지 앞에 모인 보수단체 회원들이 트럼프를 환영하는 행사를 열고 있다. 김민욱 기자

7일 평택 미군기지 앞에 모인 보수단체 회원들이 트럼프를 환영하는 행사를 열고 있다. 김민욱 기자

보수성향 단체는 결집했다. 대한애국당 평택지부는 이미 지난달 24일 일찌감치 캠프 험프리스 주출입구 인근 공원 등 2곳에 집회신고를 낸 상태다. 진보 성향 단체들보다 먼저 장소를 선점하려는 듯 집회 기간이 오는 22일까지 무려 27일이나 된다. 시간도 매일 오전 7시부터 자정 직전까지 16시간 이상 계획됐다.

친미 단체로 알려진 평택시 재향군인회와 전국구국연합회 두 단체도 지난 1일과 지난달 30일 미군기지 정문 맞은편 등에 집회 신고를 냈다. 팽성상인회도 지난달 25일과 지난 1일 기지 주 출입구 맞은편 인도와 정문 맞은편 공원 쪽 등 2곳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했다.

마린 원은 미국에서 공수한 전용헬기다. 프로펠러와 동체 일부를 분해해 돌여온 뒤 다시 조립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서 대부분 이 헬기를 타고 이동할 예정이다. [뉴스1]

마린 원은 미국에서 공수한 전용헬기다. 프로펠러와 동체 일부를 분해해 돌여온 뒤 다시 조립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내서 대부분 이 헬기를 타고 이동할 예정이다. [뉴스1]

이들은 아침 일찍부터 나와 미군기지 맞은편 우측도로를 차지했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트럼프 대통령을 환영한다"고 외쳤다. '김정은 참수' '북한 폭격' 등 과격한 구호도 나왔다.

경기도내 보수단체 외에 부산·전북·김제 등 타지방에서 관광버스를 대절해 평택으로 집결했다. 경찰은 이날 평택을 방문한 보수단체 회원 수만 1800여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팽성읍상인회에서 준비한 국수 1000여명 분이 금세 동났다.

7일 평택 미군기지 앞에 모인 보수단체 회원들이 트럼프를 환영하는 행사를 열고 있다. 경찰이 경비를 위해 보수단체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김민욱 기자

7일 평택 미군기지 앞에 모인 보수단체 회원들이 트럼프를 환영하는 행사를 열고 있다. 경찰이 경비를 위해 보수단체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김민욱 기자

트럼프 대통령 환영 행렬 속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을 촉구하는 목소리와 문재인 현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 인권유린 규탄 및 석방촉구 요구’가 담긴 현수막 아래서 서명운동도 이뤄졌다.

‘죄 없는 박근혜 대통령을 석방하라’는 요구가 새겨진 옷을 걸친 시민 진모(63)씨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박 대통령의 억울함과 국내 상황을 알리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7일 오후 보수단체 회원들이 평택 캠프리스 앞에서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최모란 기자

7일 오후 보수단체 회원들이 평택 캠프리스 앞에서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최모란 기자

보수단체 회원들은 도로 한 개 차선에서 650m가량 행진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타도하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진보단체는 이들 보수단체와의 마찰 등을 우려해 치고 빠졌다. 이날 오후 1시쯤 자진 해산했다. 이들은 당초 미군 기지 주변을 따라 8~9㎞를 걷는 가두 행진도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집회만 여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집회 참여 인원도 150명에서 20명으로 대폭 줄였다.

7일 평택 미군기지 앞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반대하는 평택지역 시민 단체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최모란 기자

7일 평택 미군기지 앞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반대하는 평택지역 시민 단체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최모란 기자

경기도나 서울 등 다른 진보단체들과 연대해 평택에서 집회는 하지 않았다.

이은우 사드반대 탄저균추방 평택시민행동 상임대표는 "미군기지 건설을 위해 대추리 등 마을 주민들이 쫓겨나야 했고 이제는 주한미군으로 인한 범죄와 소음·환경오염 등에 시달리고 있다"며 "진보단체가 아닌 평택시민의 입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진보단체가 "NO TRUMP" "전쟁을 반대한다"고 외치자 맞은편 보수단체들은 "WE LOVE TRUMP" "트럼프 대통령을 환영한다"며 경쟁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은 이날 혹시 모를 폭력적 기습시위 가능성에 대비해 17개 중대(한 개 중대 인원 70~80명)를 대기하도록 했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오후 3시쯤 평택을 떠나 서울 광화문 광장 앞으로 이동한다는 계획이다.

7일 평택 미군기지 앞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반대하는 평택지역 시민 단체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최모란 기자

7일 평택 미군기지 앞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반대하는 평택지역 시민 단체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최모란 기자

한편 트럼프 대통령 내외는 이날 낮 12시54분쯤 캠프 험프리스에 도착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 보다 먼저 캠프 험프리스를 찾았다. 예정에 없던 깜짝 방문이었다. 두 나라 대통령은 양국 군 장병을 격려하고 합동 정세브리핑 청취 등 일정을 소화한 뒤 서울 청와대로 이동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8일 다음 순방국인 중국으로 떠난다. 8일에는 국회연설도 예정돼 있다.

평택=최모란·김민욱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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