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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 경제] 툭하면 나오는 부동산 대책,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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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Q. 요즘 정부가 공들여 추진하는 정책 중 하나가 부동산 대책이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정부가 서울 강남의 투기 수요, 집을 2채 이상 가진 ‘다주택자’를 겨냥해 대출은 죄고, 세금은 올리고, 거래는 불편하게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자주 내놓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집값 너무 뛰면 서민 삶 고달프고 급락하면 경제 휘청"

A. 한국인의 부동산 사랑은 세계적으로도 유별납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가계의 비(非)금융자산 비중은 75.8%로 나타났습니다. 비금융자산 대부분은 아파트·주택과 빌딩 등 건물과 땅입니다. 미국의 경우 비금융자산 비중이 34.9%입니다. 예금·주식·펀드 등 금융자산 비중이 70%에 가깝습니다. 한국의 비금융자산 비중은 일본(43.7%)·영국(55.3%)·캐나다(56.7%)·독일(67.9%)·프랑스(68.8%) 등 선진국의 비금융자산 비중과 비교해도 월등히 높습니다.

[그래픽=박춘환, 김회용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김회용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집값이 너무 뛰면 세입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반대로 집값이 너무 떨어지면 집주인들의 원성이 높아집니다. 역대 정부가 민심과 밀접한 부동산 시장 동향에 민감한 이유입니다. 나라 경제 측면에서도 부동산 대책이 필요합니다. 가계빚의 대부분은 주택을 담보로 한 대출입니다. 집값이 계속 뛰면 빚을 내 집을 사려는 수요가 늘고 가계빚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불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품이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집값이 떨어지면 거품이 한 번에 터지면서 경제 위기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돼 전 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금융위기도 결국 과도한 주택담보대출 거품 때문입니다. 반대로 집값이 떨어지면 빚을 낸 가계가 흔들리면서 소비가 위축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빚을 제대로 갚지 못하면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도 문제가 됩니다. 자칫 하면 경제 전제가 크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정부는 부동산을 띄우는 대책을 내놓곤 했습니다.

그렇다면 ‘적정한’ 집값 상승률 수준은 얼마일까요. 전문가들은 정부 부동산 대책의 목표가 집값 상승률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물가 상승률 수준으로 잡아놓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집값을 정부가 의도한 대로 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동산은 심리기 때문이지요. 시장이 가라앉으면 정부가 아무리 부양책을 내밀어도 좀처럼 분위기를 띄우기 어렵고, 시장이 한 번 달아오르면 정부가 규제책을 내놔도 날뛰는 집값을 잡기 어렵습니다.

역대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경기와 밀접하게 맞물려 움직였습니다. 지난 5월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과 역대 정부가 내건 부동산 정책 목표는 ‘서민 주거안정’으로 항상 같았습니다. 하지만 대책은 경기에 따라 냉·온탕을 오갔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 규제책을 내놨고, 경기가 부진하면 다른 정책보다 약발이 강하고 빠른 부동산 활성화 대책으로 대응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부동산 시장이 침체한 1980년 취임했습니다. 출범 초기엔 잇따라 부양책을 꺼내 들었지요. 양도소득세를 면제하고 주택 구입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신도시 개발의 근간이 된 ‘택지개발 촉진법’도 제정했습니다. 그러다 투기가 과열하자 분양가 규제, 불법 전매 금지, 종합토지세 신설 등 규제로 돌아섰습니다. 하지만 고삐 풀린 집값은 경기 호황과 서울올림픽 특수 등을 타고 급등했습니다.

노태우 정부는 전두환 정부 말기 투기판으로 전락한 부동산 시장에 극약 처방을 내렸습니다. 88년 취임 첫해 내놓은 부동산 종합대책에 투기 억제지역 확대, 종합토지세 부과 조기 실시, 1가구 1주택 비과세요건 강화 등을 포함시켰습니다. 89년엔 공시지가제도도 도입했습니다. 경기도 분당·일산 등 신도시에 주택 214만 가구를 풀었습니다.

바통을 이어받은 김영삼 정부도 규제 모드를 이어갔습니다. 95년 금융·부동산실명제를 도입했습니다. 부동산 거래가 전반적으로 위축됐지만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전국 아파트값은 평균 3% 오르는 데 그쳤습니다. 그러다 부동산 시장은 1997년 외환위기(IMF)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로 추락한 부동산 시장을 띄워야 했습니다. 분양가부터 자율화했지요. 그 결과 노무현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하기 직전인 2007년까지 분양가는 천정부지로 뛰었습니다. 양도소득세·취·등록세 감면, 전매 제한 폐지, 청약요건 완화, 대출 확대 등 전면적인 부양책이 등장했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전국 아파트값은 평균 38%, 서울 아파트값은 60% 뛰었습니다.

과열된 시장을 넘겨받은 노무현 정부는 투기판을 잠재우는 데 주력했습니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앞세워 집값이 급등한 강남·서초·송파·목동·분당·용인·평촌 등 7곳을 ‘버블 세븐’으로 지정해 단속에 나섰습니다. 종합부동산세 신설, 양도소득세 강화, 분양권 전매 제한 등 강경책을 쏟아냈고 분양가 자율화를 폐지했습니다.

강남 재건축 시장을 중심으로 DTI(총부채상환비율)를 도입했고, LTV(주택담보대출비율)는 40%까지 낮췄습니다. 집을 살 때 꼭 필요한 대출을 바짝 죈 것입니다. ‘강수’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 시절 전국 아파트값은 평균 34% 올랐습니다. 서울은 56% 급등했고요.

후유증은 이명박 정부로 이어졌습니다. 건설사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중반기부터 취·등록세 감면, 미분양 주택 양도세 면제, 대출 규제 완화 등 부양책을 하나둘 내놨지만 노무현 정부 때 워낙 강력한 규제가 나온 탓에 주택 시장을 좀처럼 회복시키지 못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서울 아파트값은 평균 3% 뒷걸음질 쳤습니다.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가 꺾인 건 이명박 정부가 처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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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취임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빚내서 집 사라’는 식의 규제 완화 정책을 통해 부동산 경기 부양에 ‘올인’했습니다. DTI·LTV를 완화하고 양도세를 한시 면제했지요. 이에 강남을 비롯한 서울 아파트값은 거품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8년을 뛰어넘어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가계 부채가 급증하자 지난해 중도금 대출 규제, 분양권 전매 제한 등 아파트 시장을 정조준한 11·3 부동산 대책을 꺼내 들며 규제로 돌아섰습니다. 박 전 대통령 취임 후 올 2월까지 전국 아파트값은 10% 올랐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규제 고삐를 바짝 죄고 있습니다. 취임 직후인 6월, 8월, 9월 잇따라 대출·청약·세제를 망라한 고강도 부동산 대책을 내놨습니다. 10월엔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통해 대출 규제까지 한층 강화했습니다.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상반기보다 다소 위축됐습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역대 대선에서 집값을 인위적으로 올리거나 떨어뜨리려고 하면 취임 이후 부작용이 나타났다. 수요·공급 기능까지 좌지우지하는 세제 혜택이나 규제는 부동산 시장을 망가뜨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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