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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당 1110원대 진입...긴축 코앞인데 원화 강세 이어지는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부터 원화 강세에 속도가 붙더니 이젠 달러당 1110원대로 올랐다. 특이한 점은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긴축 움직임이 본격화하는데도 원화가 계속 강세를 띤다는 점이다.

달러당 원화 가치 한달새 25원 올라 #미·영·유럽 돈줄 죄는데 원화 강세 이례적 #외국인 국내 주식·채권 쓸어담은 영향 #급진적인 원화 약세 전환 당분간 어려울 듯

달러당 원화 가치 추이

달러당 원화 가치 추이

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 가치는 전날보다 2.4원 오른 1112원에서 출발했다. 오전 10시 20분엔 상승 폭이 커져 1111원으로 올랐다. 닷새째 상승세다. 전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차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제롬 파월 Fed 이사를 지명하면서 금융시장에 안도감이 퍼진 영향이다. 위험자산 선호 심리가 강해지며 원화 수요도 늘어났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예상한 수준의 미국 공화당 세제 개편안과 비둘기파로 분류되는 파월 이사가 Fed 의장으로 지명되면서 위험자산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이날 오전 발표된 9월 경상 흑자 규모가 122억 달러로 예상을 웃돈 것도 원화 강세에 우호적"이라고 말했다.

달러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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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당 원화 가치는 지난달부터 가파르게 올랐다. 한 달 동안에만 25원(2.2%) 상승했다. 이 기간 달러화 가치도 올랐다. 유로화 등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지수는 지난달 1.1% 상승했다. 잠잠했던 Fed 연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다시 불거진 영향이다. 미국 경기지표가 예상보다 빠르게 좋아지면서 오는 12월 금리 인상 가능성은 커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풀어온 돈을 다시 죌 채비를 하는 곳은 미국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유럽중앙은행(ECB)은 자산 매입 규모를 월 300억 유로(약 39조원)로 줄이는 사실상 양적 완화 축소(테이퍼링) 계획을 발표했다.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은 전날 10년 만에 기준금리를 0.5%로 0.25%포인트 올리기로 했다.

보통 주요국이 금리를 올리면 해당국 통화 수요가 늘어 원화는 약세로 돌아선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가장 큰 이유는 국내에서 자금 유출 우려보다 국내 자산에 대한 투자 심리가 더욱 크기 때문이다. 지난달 외국인 투자자는 국내 주식과 채권 할 것 없이 쓸어담다시피 했다. 국내 증시에선 한 달 동안 3조2000억원어치 주식을 순매수(매수액에서 매도액을 뺀 것)했다. 거기다 북한과 미국 간 갈등이 고조됐던 9월 채권시장을 이탈했던 외국인은 지난달 4조5000억원어치 채권을 사들였다. 다른 통화를 원화로 바꿔 국내 자산에 투자하려는 투자자가 늘면서 원화도 이례적인 강세를 띤 것이다.

최근 국내 경기 회복세가 확연해진 점도 원화 강세 배경이다. 안영진 SK증권 연구원은 "3분기 국내총생산 증가율이 예상치를 웃돌면서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며 "이는 원화 강세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이며 연말까지 달러당 원화 가치는 1100원대 초중반 구간에서 오르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에도 원화 가치가 갑자기 약세로 급변할 가능성은 적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긴축이 예고돼 있는 데다 미국 행정부의 달러 약세 정책 때문이다.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글로벌 투자은행(IB) 전망치를 인용해 내년 1분기 달러당 원화 가치는 평균 1143원, 2분기엔 1145원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오는 12월 미국 Fed가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한국은 동결하는 시나리오는 원화 약세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럴 경우 2007년 8월 이후 10년 만에 한미 간 금리가 역전되고, 대규모 자금 이탈이 발생할 수 있다. 언제 다시 불거질지 모를 북한 리스크도 변수다.
이새누리 기자 newwor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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