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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마지막 생일상 차려주고 왔어요”…충주 인터넷 기사 묻지마 살인 무기징역 선고

중앙일보

입력

지난 6월 충북 충주에서 인터넷 기사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권모(55)씨가 현장검증을 위해 범행 현장으로 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월 충북 충주에서 인터넷 기사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권모(55)씨가 현장검증을 위해 범행 현장으로 가고 있다. [연합뉴스]

“어제가 아빠 생일이었어요. 무고하게 희생당한 아빠가 편히 잠드시길 바랍니다.”
청주지법 충주지원 형사1부(재판장 정택수)는 2일 인터넷 수리기사 이모(53)씨를 살해한 혐의(살인)로 구속 기소된 권모(55)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장을 나온 피해자 이씨의 딸(21)은 ”만감이 교차한다. 가해자는 형을 살면 그만이지만 아빠를 더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을 수 없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선고 전날 피해자 이씨 생일…유족들 “무고한 희생 없었으면” #재판부, 가해자 권씨에 무기징역…“무작위로 호출된 기사 살해하기로 마음 먹어” #“일면식 없는 피해자 숨지고 유족들 씻을 수 없는 아픔줘” 지적

선고 공판을 하루 앞둔 1일(음력 9월 13일)은 공교롭게도 숨진 이씨의 생일이었다. 가족들은 80대 노모와 아내, 두 자녀의 가장이었던 이씨의 마지막 생일상을 정성스럽게 차렸다고 한다. 이씨의 동생(47)은 “묻지마 범죄 피해자가 더이상 발생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당초 검찰이 구형한대로 선고결과가 나왔다. 권씨가 자신의 죄를 진정성 있게 뉘우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충북 충주에서 인터넷 기사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권모(55)씨가 현장검증을 위해 범행 현장으로 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월 충북 충주에서 인터넷 기사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권모(55)씨가 현장검증을 위해 범행 현장으로 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월 충북 충주에서 발생한 인터넷 수리기사 살해 사건은 전형적인 ‘묻지마 살인’이었다. 숨진 이씨는 사건이 발생한 6월 16일 오전 11시7분쯤 충주시 칠금동의 권씨의 집에 들렀다 난데없이 휘두른 흉기에 수차례 찔려 숨졌다. 권씨는 “인터넷이 제대로 되지 않아 불만을 품고 있다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 일로 피해자 이씨의 가정은 파탄이 났다. 이씨는 24년째 인터넷 수리기사와 인터넷 영업 업무를 하며 가족 생계를 부양해 왔다. 2014년 대기업 통신사인 K사를 명예퇴직하고 그 해 K사 자회사에 재취업 해 4년째 인터넷 수리기사 일을 하고 있었다. 이씨는 월급 240만원 정도를 받아 대학생인 자녀와 아내, 80대 노모를 돌봤다. 이씨의 아내는 충주의 한 전자제품 공장에서 한 달에 100만원 정도를 받는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다.

인터넷 기사를 살해한 가해자 권씨가 사용했던 컴퓨터. [연합뉴스]

인터넷 기사를 살해한 가해자 권씨가 사용했던 컴퓨터. [연합뉴스]

이씨는 K사 재직시절 ‘친절상’을 받을 정도로 누구에게나 살가웠다고 한다. 한 유가족은 “고인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며 “온갖 고생을 다하고 이제 집 장만해서 살만하니까 이런 변을 당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이씨는 집 근처에 사는 80대 노모를 극진히 모셨다고 한다. 아내 김씨(48)는 “어머니가 수도꼭지를 고쳐달라, 보일러를 고쳐달라 말하면 늦은 밤에도 달려가 손을 보고 잠자리에 들곤 했다”며 고인을 회상했다.

재판부는 법정에 선 권씨에게 엄중한 형사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한 뒤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인터넷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않는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범행도구를 미리 준비하고 무작위로 호출된 기사에 대해 살해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며 “이로인해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가 무고하게 숨지는 결과를 초래, 유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줬다”고 지적했다.

청주지법 충주지원 전경. 최종권 기자

청주지법 충주지원 전경. 최종권 기자

재판부는 이어 “‘피해자가 도주하지 않고 현장에 있는 바람에 범행을 저질렀다’는 등 진정성 있는 반성이 보이지 않았다”며 “타인의 존엄한 생명과 이를 존중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공존하기 위한 기초적인 의무다. 자신의 씻을 수 없는 과오에 대한 진정성 있는 반성이 필요하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충주=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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