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트럼프 방한 때 대규모 반미 집회에 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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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 낮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반미성향 청년단체 '청년레지스탕스' 회원 2명이 미국 비판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에 붙잡히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7일 낮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반미성향 청년단체 '청년레지스탕스' 회원 2명이 미국 비판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에 붙잡히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에 맞춰 7∼8일 예정된 대규모 반미(反美) 집회를 제한적으로만 허용하기로 했다.

청와대부터 세종대로 '경호구역' 지정 #"구역 지정되면 시민 이동 통제도 가능" #주최측은 트럼프 동선 따라 집회 예정

한국진보연대·민주노총 등 220여개 진보단체 모임인 '노(NO) 트럼프 공동행동' 측은 이 기간 서울 도심에 집회·시위 50여건을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 가운데 경복궁 동쪽인 팔판동 일대에서만 제한적으로 집회를 열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반대편인 경복궁 서쪽 효자치안센터 쪽에서는 보수성향 시민단체의 ‘태극기집회’가 예정돼 있다.

경찰이 일부 집회에 대해 집회금지 통고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집회 일부를 제한한 적은 있다. 지난 8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반대 단체에서 미국·일본대사관을 사방으로 포위하는 집회를 예고했었다. 하지만 경찰은 "대사관의 기능과 안녕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대사관 뒤편 행진을 불허했다. 법원도 경찰의 의견을 받아들여 집회 주최 측의 금지통고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

이번에 집회 금지의 근거가 된 건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경호법)’이다. 경호법에 따르면 외국 국가 원수가 방한할 경우 대통령경호처는 특정 구역을 '경호구역'으로 지정해 집회·시위는 물론 일반 시민의 통행도 일시적으로 금지할 수 있다. 경호처와 경찰은 7일 주한 미국대사관이 있는 광화문광장을 포함해 세종대로사거리 이북 지역부터 청와대 인근까지를 모두 경호구역으로 설정할 방침이다.

광화문과 청와대 인근을 경호구역으로 지정했음에도 두 곳에서 집회를 허용한 건 집회·시위의 자유 보장을 위해서라는 게 경찰 설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합법적인 장소 한 곳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집회를 허용했다"고 설명했다.

경찰로서는 NO 트럼프 공동행동이 팔판동 집회를 종료한 뒤 광화문광장으로 이동해 오후 7시쯤 개최할 예정인 범국민 촛불대회도 위험요소다. 광화문광장은 경찰에 집회·시위를 신고하지 않아도 문화제나 정당연설회를 개최할 수 있어 이를 제한할 법적 그거가 없다. 특히 이들이 광화문광장에 모이는 시간대에 트럼프 대통령이 세종대로를 따라 숙소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어 돌발 상황을 막기 위해 경찰력을 동원해 광장을 둘러싸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지난달 28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인근에서 방탄청년단 회원들이 반미, 반트럼프 촛불문화제를 하는 모습. [페이스북 캡처]

지난달 28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인근에서 방탄청년단 회원들이 반미, 반트럼프 촛불문화제를 하는 모습. [페이스북 캡처]

이날 집회에는 이번 정부 들어 처음으로 광화문에 헬맷과 방패 등 보호장구를 착용한 무장 경찰이 배치될 가능성도 있다. 일부 과격단체가 기습 시위를 감행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다만 차벽은 설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경찰 관계자는 “시위대가 수만 명 몰린다면 차벽을 설치할 수도 있겠지만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했다.

NO 트럼프 공동행동은 광화문광장 촛불대회 후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묵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의 한 고급호텔 앞으로 이동해 야간 항의 행동을 계속할 방침이다. 8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하는 것에 맞춰 국회 인근에서 규탄 시위를 펼칠 계획인만큼 경찰도 이들의 동선을 따라 가며 돌발상황을 관리할 방침이다.

'NO 트럼프 공동행동'은 트럼프 대통령 방한 직전인 이번 주말에도 반미 집회를 연다. 공동행동은 4일 오후 4시 종로1가 'NO 트럼프 NO WAR 범국민대회'를 개최한 뒤 주한미국대사관 인근까지 행진할 예정이다. 주최 측은 8000∼1만명이 집회에 참가할 거라고 신고했다.

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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