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청와대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로 박영선 민주당 의원을 검토했다. 검증동의서도 받았고 평판 조회까지 마쳤다. 주변 분위기는 발표날만 기다릴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장관은 홍종학 전 의원이었다. 박 의원과 가까운 한 인사는 “마음을 접었던 사람을 굳이 끄집어내 될 것처럼 하더니…”라고 혀를 찼다.
노무현 정부 정찬용, 이헌재에 칠고초려 #47명 검증했다는데 제대로 공들인 건가
홍 후보자의 상황이 악화일로이다 보니 차라리 ‘박영선 카드’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중소기업 전문가는 아니지만 4선 의원에 여성 장관, 중소·벤처기업이 많은 지역구(서울 구로구) 등. 더구나 청와대가 검증 과정에서 홍 후보자의 재산 문제를 상당 부분 알고 있었다면 말이다. 그런데 왜 홍종학이었을까. 과거 친문 세력과 덜컹거렸던 박 의원이 껄끄러웠던 걸까, 아니면 처음부터 홍 후보자였는데 그냥 검증만 해봤던 걸까.
청와대가 얼마나 장관 인선에 공을 들였는지도 의문이다. 청와대는 지금까지 장관 후보자만 47명을 검증했다. 적임자로 보이는 기업인들은 주식 백지신탁 등의 이유로 고사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노무현 청와대 시절, 정찬용 당시 인사수석은 이헌재 전 장관을 경제부총리로 영입하기 위해 ‘칠고초려(七顧草廬)’를 했다. “성가신 짓거리 안 한다”며 거절하는 그를 일곱 번이나 찾아갔다. 당시에도 후보감들이 평판 조회 등에 문제가 있어 인선이 쉽지 않았다. 정 전 수석은 “맡아 주셔야 시장이 안심한다”고 설득했다. 고사하는 이 전 장관으로부터 막판에 폭탄주 15잔을 마셔가며 수락을 받아낸 일화는 관가에서 유명하다.
과연 지금 청와대는 47명을 검증하면서 어떤 노력을 했을까. 백지신탁을 못 하겠다는 인사들에게 찾아가 몇 번이나 설득했나. 정말 하려는 인재가 없어 홍 후보자여야 한다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까. 논란에 반응하는 청와대의 태도도 미스터리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홍 후보자와 관련된 질문을 던진 기자들에게 “(기자) 여러분도 기사 쓴 대로 살아야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죄 없는 자 이 여인을 돌로 치라”는 성경 말씀을 현실 정치에 적용하라는 것인가. 공직자의 말로는 부적절하다.
이 관계자는 또 “증여 방식은 상식적인 것”이라고도 했다. 법 위반 사항이 없는 만큼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 역시 본질을 흐리는 얘기다. 지금 여론이 문제 삼는 것은 법 위반이 아니다.
홍 후보자는 ‘부의 과도한 대물림’을 비판했지만, 자신은 거액을 상속받았고, “대를 건너뛴 상속은 세금을 더 매겨야 한다”는 법안 발의에 참여해 놓고 초등생 딸(현재 중학생)에게는 장모 재산이 부인을 건너뛰어 증여됐다. 이 때문에 세금을 피하기 위한 ‘쪼개기 증여’란 비판이 나왔다. 또 특목고 폐지를 주장한 그의 딸은 국제중에 다니고 있다. 여론은 이런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문제 삼는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청문회에서 방어막을 칠 민주당이 얼마나 선전할지다. “한 번 더 거꾸러지면 안 된다”는 기류가 강하긴 하지만 “왜 홍종학이었을까” 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야당은 호재를 만난 분위기다. 당장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1일 ‘쪼개기 증여’ 의혹에 대해 “가히 혁신적 세금회피이고 창조적 증여”라고 비판했다. 자유한국당의 한 인사는 “홍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난타를 당하고 난 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을 그대로 강행하더라도 우리에게 나쁠 것이 없다”고 했다. 다른 인사는 “제2의 탁현민 같은 거 아니겠냐”고도 했다.
청와대가 홍 후보자를 적극 방어하고 나선 건 뒤집어 보면 그만큼 곤혹스럽다는 뜻도 된다. 야당의 주장대로 홍 후보자를 물러나게 한다면 그 뒤에 닥쳐올 ‘인사 책임론’ 등의 후폭풍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냉철해져야 한다. 인사는 메시지다. 홍 후보자를 임명한 메시지는 과연 뭔가. 청와대의 고민이 원점에서 다시 깊어져야 할 시점이다.
신용호 정치부 부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