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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강해진 시진핑과 아베에 둘러싸인 한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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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상렬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이상렬 국제부장

이상렬 국제부장

2013년 초의 일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아베 정권의 무제한 통화 방출정책을 ‘이웃 나라 거지 만드는 정책’이라고 작심 비판했다. 엔화 값은 떨어지고 원화 값은 오르던 상황에 속수무책이던 우리 경제당국자들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국제금융 시스템의 수호자인 IMF 총재가 나섰으니 일본은행(BOJ)의 엔화 방출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걸로 끝이었다. IMF는 더 이상 아베노믹스를 비판하지도 공격하지도 않았다. 한 달쯤 뒤 IMF 핵심 인사가 전해준 얘기를 듣고서야 의문이 풀렸다. 라가르드 총재의 발언 며칠 뒤 IMF 최고기구인 이사회에 아베노믹스가 안건으로 올랐다. 그런데 미국 쪽에서 “아베노믹스는 세계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된다”며 강력하게 변호했고, 그러자 아베노믹스를 성토해온 다른 이사국들도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더란 것이었다. 미국 자신이 신나게 돈을 찍어내던, 양적완화의 본산인 마당에 일본을 비난할 처지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선거 압승한 아베와 집권 2기 시진핑, 권력 한층 강해져 #코리아패싱과 중·일 자국 우선주의 속에도 여야 정쟁만

이를 계기로 아베노믹스는 국제적 공인을 받게 된다. IMF의 절대 주주인 미국의 힘과 그 미국을 꽉 붙잡고 있는 일본의 저력, 미·일 동맹의 끈끈함을 확인한 사건이었다. 동시에 일본의 통화정책이 우리 경제의 목을 졸라도 뚜렷한 대항책이 없는 우리의 한계를 절감한 순간이기도 했다.

우리는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부당하고 억울하게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당장 사드 보복이 그렇다. 한류 제한과 한국 여행 금지, 롯데마트의 영업제한, 현대차의 곤경 등으로 우리 경제 곳곳에 골병이 들었다. 명백히 세계 무역질서에 반하는데도 우리는 제대로 항의조차 못했다. 그 같은 사드 보복 결정과 해제의 최종 승인권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쥐고 있다는 것이 시중의 해석이다.

그 아베와 시진핑이 한층 강해졌다. 지금 일본은 확고한 아베 1강 시대다. 중의원 선거를 압승으로 이끈 아베의 위세를 견제할 대항마가 보이지 않는다. 아베는 전후 최장수 총리를 노리며 질주하고 있다. 중국에선 시진핑의 집권 2기가 열렸다. 그는 마오쩌둥(毛澤東) 이후 최강의 권력 장악에 성공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1면의 절반을 차지한 그의 사진이-장쩌민·후진타오 집권기엔 없었던 일이다- ‘시진핑 1인 천하’의 개막을 알린다.

게다가 아베와 시진핑, 두 정상 모두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세계를 들쑤시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막역한 관계를 구축했다. ‘도널드~’ ‘신조~’ 하면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아베-트럼프 관계는 역대급으로 돈독하다. 시진핑은 트럼프로부터 “우리는 아주 좋은, 특별한 관계”라는 찬사를 듣는다. 자신감 충만한 아베가 트럼프를 만나서, 극강의 권력을 거머쥔 시진핑이 트럼프와 마주 앉아서 그들만의 계산으로 북핵 해법 거래를 할지 모른다는 ‘코리아 패싱’ 불안감은 공연한 것이 아니다.

북핵만 걱정스러운 게 아니다. 아베는 여세를 몰아 아베노믹스에 또 한번의 드라이브를 걸 기세다. 이걸 시장이 먼저 간파했다. 일본 총선 전 마지막 거래일인 20일, 엔화 가치는 100엔당 1000원 선을 뚫고 5개월래 최저로 내려앉았다.

시진핑 2기는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를 것이다. 공산당 대회에선 양적 목표를 제시하지 않았다. 중국 지도부는 거품을 걷어내고 부실을 도려내는 구조개혁을 예고했다. 그 같은 중국의 급선회가 우리에게 또 어떤 태풍을 몰고 올지 모른다. 중국의 10%대 고속성장이 가져온 2000년대 원자재 가격 폭등, 중국 성장률 둔화 뒤 찾아온 원자재 가격 급락처럼 중국이 요동칠 때마다 우리 경제는 몸살을 앓았다.

더 강해진 아베와 시진핑은 우리 여·야·정(與野政)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도 상대하기 벅차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와 야당은 적폐청산의 굿판에서 벼랑 끝 대결을 벌이고 있다. 마치 수십만 왜군이 바다를 건너오는 데도 동서 붕당으로 갈라졌던 400여 년 전을 보는 것 같다.

이상렬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