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원전 매몰비용 나랏돈으로 메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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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신규 원전 백지화 정책에 따른 매몰비용을 정부가 부담하겠다고 밝혔다. 작게는 2445억원에서 많게는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나랏돈으로 해결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신규원전 6기 백지화 매몰비용 #2445억원~1조원 추산 #백운규 산업부 장관 "정부 예산으로 지불" #전문가 "급속한 탈원전 추진 비용 혈세로 메워" #월성 1호기는 한수원 이사회서 결정할 듯 #이관섭 사장 "중단 여부 법적 판단 거쳐야"

백 장관은 3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 참석해 “신규 원전을 백지화하겠다고 했는데 매몰비용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정우택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문에 “매몰비용에 대한 보상은 정부가 하겠디”고 말했다. 이어 손금주 국민의당 의원이 “금액에 상관없이 백지화 매몰비용을 부담하겠다 의미냐”고 묻자 백 장관은 “정부가 부담하도록 하겠다”며 “다만 검토 과정을 거쳐 적법하게 지출한 부분만 보상하겠다”고 말했다.

[국정감사-산자부 등/20171031/국회/박종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가 31일 국회에서 열렸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질의에 답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국정감사-산자부 등/20171031/국회/박종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가 31일 국회에서 열렸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질의에 답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정부가 백지화하겠다는 신규 원전은 신한울 3·4호기, 천지 1·2호기와 이름을 정하지 않은 원전 2기를 포함해 총 6기다. 신한울 3·4호기는 종합설계용역 단계에서 천지 1·2호기는 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사업 진행이 중단된 상태다. 백 장관은 한국수력원자력의 추정치를 근거로 “전체 매몰비용 규모는 2445억원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 규모는 이보다 클 것이란 게 중론이다. 매몰비용에 관한 논란은 지난 24일 한수원 국정감사에서도 불거졌다. 당시 윤한홍 자유한국당 의원은 “한수원에서 매몰비용을 추산할 때 건설지역 지원금 1780억원과 협력사 배상 예상비용 3500억원 등을 제외했다”며 “이를 포함할 경우 실제 매몰비용은 총 9955억원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손금주 의원 역시 이들 신규 원전 건설 중단으로 인한 매몰비용이 8930억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손 의원은 “탈원전 에너지정책 변화는 어마어마한 사회적 비용이 들기 때문에 국민과 국회 동의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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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한수원은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에 따른 손실비용을 자체적으로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두고도 논란이 적지 않다. 이관섭 한수원 사장은 24일 공사 중단기간 발생한 비용에 대해 정부에 손실 보상을 청구할 것인지에 묻는 질문에 “이사회에서 비용을 예비비로 지출하기로 의결했지만 정부에 손실 보상 소송을 하는 것이 배임과 관련해 꼭 필요한 조치인지는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백 장관의 발언은 신규 원전 건설 중단에 따른 비용까지 한수원이 부담할 경우 ‘정부가 결정해놓고 손실은 공기업에 떠넘긴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부담한다는 것은 예산으로 집행한다는 의미다. 정부는 지난 24일 발표한 에너지 전환 로드맵에서 ‘원전의 단계적 감축 과정에서 적법하고 정당하게 지출된 비용에 대해서는 정부가 관계부처 협의 및 국회 심의를 거쳐 기금 등 여유재원을 활용해 보전하겠다’고 밝혔다. 익명을 원한 한 경영학과 교수는 “당장 내년 예산엔 이와 관련한 비용이 없다”며 “별도로 편성하더라도 정부의 급속한 탈원전 정책 추진에 따른 비용을 혈세로 메운다는 비판을 면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수력원자력 및 발전기관등에 대한 국정감사가 2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쳐기업위원회에서 열렸다. 이관섭 한수원 사장이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171024

한국수력원자력 및 발전기관등에 대한 국정감사가 24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쳐기업위원회에서 열렸다. 이관섭 한수원 사장이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171024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는 가장 쉬운 길을 택할 전망이다. 공기업인 한수원을 압박해 이사회에서 중단 결의를 하는 방식이다. 백 장관은 이날 이미 가동 중인 월성 1호기를 중단할 법적 근거가 있는지를 묻는 윤한홍 의원의 질문에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의 의결만 거치면 월성 1호기를 중단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사장 역시 “이사회 의결을 거치면 된다”고 답했다.

다만 이 사장은 “회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법적 판단을 거쳐야 하지만 책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월성 1호기 발전단가는 정산단가보다 훨씬 높다”며 “가동하는 게 회사 입장에서 단기적으로 손실이지만 그 전에 투자한 부분의 감가상각 문제가 있어 플러스, 마이너스 효과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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