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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턱밑까지 단숨에 치고 들어간 뮬러 특검…다음 타겟은 누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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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뮬러 미국 특별검사가 러시아 대선개입 의혹 수사에서 처음으로 기소한 폴 매너포트 전 선거대책본부장(왼쪽), 리처드 게이츠 전 선거참모(가운데), 조지 파파도풀러스 전 외교정책고문.[AP=연합뉴스]

로버트 뮬러 미국 특별검사가 러시아 대선개입 의혹 수사에서 처음으로 기소한 폴 매너포트 전 선거대책본부장(왼쪽), 리처드 게이츠 전 선거참모(가운데), 조지 파파도풀러스 전 외교정책고문.[AP=연합뉴스]

지난 5개월 간 수면 아래서 조용히 움직였던 로버트 뮬러 미국 특별검사가 단숨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턱밑까지 치고 들어왔다. 폴 매너포트 전 선거대책본부장과 사업 동료이자 선거 참모였던 리처드 게이츠, 조지 파파도풀러스 전 외교정책 고문을 한꺼번에 기소하면서다. 매너포트 전 본부장 등 두 명에겐 미국 상대 모의죄, 돈세탁 공모죄, 외국 로비스트 미등록죄 등 12개 혐의, 파파도풀러스 전 고문에겐 위증ㆍ증거인멸 등 3개 혐의를 적용했다.

30일(현지시각) 미국 법무부 및 워싱턴 연방법원이 공개한 기소장에 따르면 매너포트 전 본부장과 게이츠는 2005년부터 2015년까지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가까운 재벌 출신인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 및 그가 이끄는 우크라이나 지역당 로비스트로 활동했다.
연방법에 따라 외국 로비스트로 활동하기 위해선 등록해야 하는 절차도 따르지 않았다. 이어 두 사람은 2006년부터 올해까지 키프로스, 세인트 빈센트, 그라나다, 세이셸 제도 등에 역외계좌를 만들어 7500만 달러(약 840억원) 상당을 돈세탁하고, 이 가운데 1800만 달러(약 202억원)와 300만 달러(약 34억원)를 각자 로비대금으로 받아 고급 콘도ㆍ주택 및 명품 승용차, 미술품 등 사치품 구입에 쓴 혐의를 받고 있다.
로버트 뮬러 특검은 직접 서명한 기소장에서 “이들은 법무부ㆍ재무부 등 미 정부기관의 합법적인 기능을 의도적으로 방해하고 손상함으로써 미국을 상대로 사기를 모의했다”고 밝혔다. 연방법원 이날 첫 재판을 열고 무죄를 주장한 매너포트와 게이츠에 “도주 우려가 있다”며 각각 1000만 달러, 500만 달러의 보석금을 매기고 가택연금을 조치했다.

폴 매너포트와 릭 게이츠의 공동 기소장[미 법무부]

폴 매너포트와 릭 게이츠의 공동 기소장[미 법무부]

파파도풀러스 전 고문은 트럼프 캠프에 합류한 지난해 3월 중순부터 7월까지 조지프 미프수드 영국 동잉글랜드대학 런던 외교대학원(LAD) 교수의 주선으로 이반 티모피프 러시아국제문제연구소 소장 등과 접촉했다. 두 사람으로부터 “미ㆍ러 관계 정상화를 위해 트럼프 당시 후보가 모스크바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면담을 하도록 하자”는 제안을 받고 폴 매너포트 본부장, 샘 클로비스 공동 선대본부장, 코리레완도프스키 선거운동 매니저 등 캠프 고위직에 보고했다.
그는 지난해 4월 26일엔 모스크바를 다녀온 미프수드 교수로부터 “러시아 정부 고위관리가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추문이 담긴 e메일 수 천개를 입수했다’고 했다”는 얘기를 듣고 이를 캠프에 보고하기도 했다. 두 달 뒤 6월 9일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인 트럼프 주니어, 사위 재러드 쿠슈너, 매너포트 전 본부장이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힐러리 후보에게 타격을 줄 정보를 갖고 있다”는 러시아 여성 변호사 나탈리아 베셀니츠카야를 만난 정황과 연결된다. 파파도풀러스는 7월 27일 워싱턴 덜레스공항에서 체포된 후 올해 1월 연방수사국(FBI) 수사관 신문에 허위증언을 하고, 2~3월 러시아 인사들과 접촉한 내용이 담긴 페이스북을 삭제하고 휴대전화기를 교체한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파파도풀러스 범죄진술서

파파도풀러스 범죄진술서

“분노”한 트럼프, 관저에서 TV보며 “특검 대책 내놔라”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유감스럽긴 하지만 폴 매너포트가 트럼프 캠페인에 합류하기 수년 전의 일”이라며 “(러시아와)공모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왜 부정직한 클린턴과 민주당에 대해선 초점을 맞추지 않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새러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도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파파도풀러스는 자원봉사자 자문위원회의 한 멤버로 일 년 내내 한 번밖에 본 적 없다”며 “내가 왜 여기서 수천 명의 자원봉사자 중 한 명을 위해 얘기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의미를 축소했다. 하지만 CNN방송은 백악관에 정통한 공화당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분노한 채 관저에 설치된 대형 TV로 상황을 지켜보면서 측근들에게 뮬러 특검에 대한 대책 마련을 재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뮬러 특검팀 “이제 시작일 뿐”…마이클 플린 등 줄기소 전망

반면 특검팀의 애런 젤린스키 검사는 파파도풀러스의 위증혐의 유죄인정 공판에서 “여기서 입증된 형사재판은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대규모 사건의 작은 부분일 뿐”이라고 말했다. 결국 수사 초점인 러시아의 선거개입 혐의,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의 공모 의혹을 밝히는 ‘로드맵’에 따라 앞으로 추가 기소가 계속 진행될 것이란 의미다.
뉴욕타임스는 “매너포트 전 본부장은 친푸틴 러시아 알루미늄 재벌인 올렉 데리파스카에게 선거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이미 알려졌고, 선거운동을 이용해 우크라이나로부터 이익을 취했다”고 보도했다. 또 파파도풀러스는 러시아를 가지 않았지만, 또 다른 외교정책 고문이던 카터 페이지가 지난해 7월 모스크바를 방문했다고 지적했다. 페이지는 2013년엔 러시아 스파이에게 미국 에너지산업 관련 문건을 전달한 혐의로도 FBI의 수사를 받아왔다.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도 지난해 12월 내정자 신분으로 세르게이 키슬랴크 전 주미 러시아대사와 만나 러시아에 대한 제재 해제를 논의한 혐의로 뮬러 특검의 수사를 받고 있다. 미 언론들은 트럼프 주니어, 재러드 쿠슈너 등 트럼프 대통령의 가족들로 특검의 수사망이 곧바로 좁혀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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