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파리바게뜨 제빵사 직접고용'…졸속 해법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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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바게뜨 제빵사 직접고용 문제가 난항 중이다. 프랜차이즈 산업의 특성상 본사와 가맹점, 인력 파견 협력업체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데다 5300여 제빵사들의 의견도 분분하기 때문이다. 업계는 파리바게뜨 고용 구조에 대해 법의 잣대로 단칼에 자를 게 아니라 ‘숙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시정명령 시한 1주일 앞…이해 엇갈려 해결 난항 #가맹점주협의회 제안, 3자 회사 대안으로 떠올라 #고용부 "제빵사 동의하면 가능할 수도" 여지 # #

지난 9월 21일 고용노동부는 파리바게뜨 본사가 9일까지 제빵사를 직접 고용하라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행 시한은 일주일여밖에 안 남았는데 가맹본부와 가맹점주, 제빵사를 파견한 협력업체, 제빵사 간의 이해가 엇갈리면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봉합하다간 일이 더 꼬이게 될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문성현 노사정위원장도 “파리바게뜨 고용구조는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지난달 8일 밝혔다.

본사가 직접 고용하면 될 일이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간단치 않다. 전체 직원 수보다 많은 5300여 명을 일시에 신규 직원으로 채용하기란 쉽지 않다. 가맹점주도 난색을 보이고 있다. 직접 고용으로 인한 인건비 상승을 결국 가맹점주가 떠안을 것이란 불안과 무엇보다 본사의 감독·감시가 독립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본사가 직접 고용하면 11개 협력업체도 문을 닫아야 한다.

당사자인 제빵사들의 의견도 제각각이다. 직접고용으로 가는 과정에서 행여 일자리를 잃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아서다. 익명을 요구한 7년 경력의 한 제빵기사는 “급여는 크게 올라가지 않지만, 본사 소속이 되면 업무 강도는 훨씬 높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2년 경력의 또 다른 제빵사는 “일자리가 줄어들면 제빵사들끼리 경쟁해야 하고, 결국 경력 있는 베테랑 제빵사만 살아남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반면 제빵사 노조를 포함한 노동계는 고용부의 결정을 반기며 기한 내에 시정명령을 이행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노조에 참가한 인원은 전체 제빵사의 10%에 못 미치는 400~500명 수준이다.

파리바게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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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속에 본사·협력업체·가맹점주가 참여하는 3자 합자회사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본사와 가맹점, 협력업체가 각각 3분의 1씩 투자하는 형태로 제빵사는 본사가 아닌 합자 사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는다. 이재광 가맹점주협의회장은 “복잡한 인력 파견 구조를 해소할 수 있으면서도 제빵사들의 처우를 개선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시정 명령 한 달 전인 지난 8월, 가맹점주협의회는 제빵사를 교육해 파견하는 3자 합자회사 설립 방안을 고용부에 제안한 바 있다.

3자 합작법인 설립에도 부정적이던 협력업체도 수긍하는 분위기다. 한 협력업체 관계자 A 씨는 “회사가 하루아침에 없어진다는 생각에 처음엔 강력하게 대응하자고 했지만, 지금은 합작법이라도 돼 일자리를 잃지 않는다면 다행이라고 생각”이라고 말했다.

애초 고용부의 시정명령은 프랜차이즈 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는 게 프랜차이즈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실질적 근로를 제공받는 자도 가맹점주이고, 대가를 지불하는 주체도 가맹점주이기 때문이다. 박주영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제빵사의 실질적인 사용자는 가맹본부가 아닌 가맹점주인데 가맹본부에 직접고용 명령을 내린 것부터 잘못된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발표 전에 제빵사뿐 아니라 가맹점주의 의견이 좀 더 고려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난항 속에 시정명령 기한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파리바게뜨 본사를 비롯해 이해 당사자들은 합의를 끌어내기에는 시한이 촉박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고용부는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판단으로 한 차례 기한 연장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 3자 합자회사 설립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자 합자회사 설립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다 해도 제빵사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고용부는 지난달 25일 “원칙은 직접고용이지만 법률상 예외 요건을 충족한다면 고용부가 제재를 가할 수 없다”며 “예외 요건이란 근로자가 합작사를 통한 채용에 동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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