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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인사이트] 54개국 3900조원 황금시장 … 검은 대륙 CFTA 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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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경제통합 속도 내는 아프리카

아프리카는 지구촌의 변두리였다. 냉전이 끝나고 세계화에 탄력이 붙던 1990년대 중반까지도 정치적 불안정과 취약한 경제구조로 이러한 주변화는 더욱 심화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아프리카 국가들도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 발전에 대한 열망을 하나씩 구체화하면서 세계화의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국제사회가 아프리카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8개권 지역경제공동체 통합 목표 #연내 자유무역지대 공식 출범 계획 #관세동맹·정치통합 장기 로드맵도 #한국·아프리카연합 협력 팔걷어

냉전 종식으로 이데올로기의 대립에서 벗어난 아프리카는 대륙의 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소련이 해체된 1991년, 아부자 조약을 체결하며 구상을 밝힌 아프리카경제공동체(AEC, African Economic Community)가 그 출발점이다. AEC의 목표는 아프리카 공동시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단일 화폐, 아프리카중앙은행과 범아프리카의회 같은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했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결속과 통합을 위해 1963년 설립된 아프리카통일기구(OAU, Organization of African Unity)가 있었지만, 냉전 시절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한 분열의 후유증 때문에 아프리카가 직면한 정치·경제적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다루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OAU는 미국과 소련의 대립으로 아프리카 국가들 사이에서 발생한 대리전의 한가운데에 끼어 큰 상처를 입었다. 그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단결과 통합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급진적 범아프리카주의(아프리카의 통일을 목적으로 하는 운동)로 접근한 카사블랑카 그룹과 온건적 범아프리카주의를 추구한 몬로비아 그룹 간의 분열에 대해서도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러한 갈등의 역사를 뛰어넘어 아프리카 대륙을 한데 묶을 새로운 정치적 틀이 필요했다. 1999년 OAU 대표들이 ‘시르테 선언’을 통해 새로운 아프리카연합(AU, African Union) 설립을 결의했고, 3년 후인 2002년 AU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AU는 아프리카의 경제 통합기구인 AEC를 구체화하는 작업부터 착수했다. 54개국을 경제적으로 하나로 묶는 공동시장을 만들기 위해 지역별로 존재하던 8개의 지역경제공동체(RECs, Regional Economic Communities)를 AEC의 8개 기둥으로 편입시켰다.

AU는 이들 RECs를 근간으로 삼아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공동시장을 마련한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RECs가 내포하고 있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AU의 구상은 출발부터 삐걱거렸다.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의 지역경제공동체 중복 가입으로, 이른바 ‘스파게티 보울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스파게티 보울 효과란 한 국가가 여러 자유무역협정에 참여하면서 협정마다 다른 규정을 모두 충족시키기 어려워 그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아프리카경제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한 8개의 기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지역별 경제통합을 이룬 후 대륙의 통합을 완성한다는 AU의 구상에도 차질이 생겼다. 그러다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아프리카 경제 통합의 또 다른 자극제로 작용했다. 세계 경제가 본격적인 침체국면으로 빠져들자 위기의식을 느낀 아프리카 국가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덩치를 키우는 것이었다.

2011년 동남아프리카공동시장(COMESA)과 남아프리카개발공동체(SADC), 그리고 동아프리카공동체(EAC)가 단일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위한 ‘3자 자유무역지대(Tripartite Free Trade Area)’ 협상에 들어갔다. 협상 시작 1년도 채 되지 않아 대륙 전체로 범위를 확대하는 문제가 논의됐고, 2012년 1월 제 18차 AU정상회의에서 ‘아프리카 대륙 자유무역지대(CFTA, Continental Free Trade Area)’를 설립하는 역사적인 안건이 채택됐다.

CFTA는 아프리카 54개국 전체가 참여하는 야심찬 경제통합 프로젝트다. 아프리카 국가 간 교역의 장벽을 낮추고 사람과 투자자금의 이동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12억 명의 아프리카 인구가 국경을 초월해 상품과 서비스를 주고받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구체적으로 2012년 1월부터 2022년 1월까지 대륙 내 교역을 두 배로 늘려 아프리카 발전의 토대로 활용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5년여의 작업을 거쳐 AU는 연내 공식 출범을 목표로 현재 막바지 손질에 한창이다. CFTA가 출범하면 아프리카 54개국의 국내총생산(GDP)을 합쳐 3조4000억 달러(약 3900조원)가 넘는 대규모 자유무역지대가 탄생한다.

AU의 경제통합 구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륙 내 교역을 활성화하고 아프리카 국가 간에는 관세를 물리지 않는 아프리카 관세동맹(Africa Customs Unoin)을 2019년까지 출범시킬 계획이다. 아프리카공동시장(African Common Market, 2025년), 아프리카금융연합(African Monetary Union, 2030년) 등 경제통합의 강도를 높여가는 로드맵도 마련했다. 종착역은 아프리카 대륙의 정치통합체 건설이다. OAU가 만들어진 때로부터 100년 후인 2063년까지 아프리카합중국(United States of Africa)을 출범시키는 것이다. AU의 로드맵대로 라면 46년 후 지구촌에는 범아프리카주의에 기반한 통일 아프리카 대륙이 탄생할 것이다.

이런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AU가 최근 우리나라와 양자간 협력을 논의하기 위해 자리를 함께 했다. 지난 9월11일 서울에서 열린 제 1차 한-AU 정책협의회가 그것이다. 박용민 외교부 아중동국장과 파투마타 카바 시디베 AU 상주대표위원회(PRC) 의장국 대표가 양측 수석대표로 참석했다. 우리나라는 2005년 AU 옵서버 자격을 획득한 이후, 2006년부터 장관급 회의인 한-아프리카 포럼을 개최해왔다. 이번 정책협의회는 지난해 체결된 한-AU 협력 양해각서(MOU)에 따라 한-아프리카 포럼 후속조치 등을 협의하기 위해 처음 열렸다.

박경덕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국제관계학 박사

박경덕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국제관계학 박사

한국과 아프리카가 본격적으로 협력을 논의하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정책협의회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아프리카 54개국 전체가 단일 자유무역지대로 재탄생하는 CFTA의 출범이 임박한 시점이라 더욱 그렇다.

박경덕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국제관계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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