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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싱어’ 대결 못잖은 강렬한 듀엣 기대하세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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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호 16면

정원영 박강현

정원영 박강현

‘새로운 세상’을 열망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쪽이 있기 때문이다. ‘헬조선’이라는 지금도 그렇지만 17세기 조선, 광해군 시절도 그랬다. 조정은 임진왜란 중 공을 세운 서얼에게 과거 응시 기회를 줬다가 빼앗았고, 여주 소양강가에 모여 살며 은밀히 혁명을 꿈꾸던 서자 무리 ‘강변칠우’는 결국 역모죄를 쓰고 처형당했다.

창작가무극 ‘칠서’ 주연배우 정원영·박강현

서울예술단의 신작 ‘칠서’(11월 10~17일, 충무아트홀 대극장)는 역사에 ‘계축옥사’로 짧게 기록된 이 일곱 서자의 꿈과 좌절, 그리고 이들을 응원했던 ‘기성세대의 양심’ 허균에 얽힌 이야기를 엮어낸 팩션 창작가무극이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홍길동전’ 이면에 숨겨진 흥미진진한 탄생 비화다. 이 ‘한국판 수퍼히어로’ 이야기가 무기력한 ‘n포 세대’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한국적 뮤지컬로 탄생할 수 있을까. 허균 역을 맡은 정원영(32)과 JTBC ‘팬텀싱어2’ 우승 후보로 뜬 광해 역의 박강현(27)을 미리 만났다.


창작가무극 ‘칠서’

창작가무극 ‘칠서’

예술의전당 앞 작은 카페의 주인장도 ‘팬텀싱어’의 팬이었다. 박강현을 알아보고 “꼭 우승하라”며 갓 구운 애플파이에 아이스크림까지 얹어 서비스로 내 왔고, 강현은 아이처럼 좋아하며 시식에 열중했다. 결승 2차전 생방송을 앞두고 있지만 그는 차분했다. 쟁쟁한 성악가 김주택·정필립·한태인과 팀을 꾸렸으나 결승 1차전에서 3위로 처진 데다 2차전 마지막 선곡도 아직 안 된 상태였지만 초조한 기색은커녕, 3년 차 신인 배우에 걸맞지 않는 강단이 엿보였다. “우승요? 자신 있습니다. 다른 팀도 막강하지만 우리 팀도 정말 잘하거든요. 결승까지 왔으니 욕심을 버리면 안되겠죠.”(박)

방송에서 큰 웃음을 줬던 “제 안에 소녀가 있어요”라는 애드립과 하얀 피부의 미소년 이미지와는 달리 자칭 ‘상남자 스타일’이다. 1대1 대결부터 환상의 케미를 보여줬던 이충주에게 버림받은 것 아니냐고 슬쩍 건드려봐도, “떠나간 기차에 미련은 없다”고 쿨하게 응수했다. “지금 팀이 좋아요. 김주택 형은 사람이 고파서 나왔다는데 진짜 그런 것 같아요. 첨엔 목소리가 너무 커서 놀랐는데 정말 순수해요. 농부테너 필립씨도 귀엽구요, 베이스 한태인은 막낸데 제일 형 같아요. 실질적인 리더죠. 결국 4명의 화합이 잘 맞는 팀이 이기겠죠.”(박)

성격이 하도 밝아 별명이 ‘햇살’이라는 정원영은 듣던대로 유머가 넘쳤다. 같은 소속사인 박강현과 ‘절친’이라 늘 함께 맛집을 찾아다닌다는 그는 “지난번 사주신 고기가 정말 맛있었다”며 입맛을 다시는 강현에게 “자신감 있는 고기집을 선호한다”며 동네 고기집을 추천했다. “‘한번 드셔 보세요’ 하는 집은 별로에요. ‘일단 입에 넣어보세요, 바로 녹아 없어져 경찰에 신고할걸요’ 이렇게 나오는 집이 좋아요. 그런 곳만 찾다보니 요즘엔 ‘햇살’이 아니라 그냥 ‘살’이 됐네요.(웃음)”(정)

정원영이 있는 연습실엔 늘 웃음이 넘친다. 그가 “모든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역할을 담당”(박)하고 있어서다. 여배우가 거의 없어 칙칙할 것으로 예상되는 ‘칠서’ 연습실도 화기애애하단다. “형은 끼도 많지만 자극을 주는 사람이라 배울 게 정말 많아요. ‘칠서’ 대본 분석과정만 봐도 캐릭터에 대해 공부하고 자료 준비해 오는 게 놀라울 정도죠.”(박)

“서울예술단 작품은 제가 오히려 많이 배워갑니다. ‘잃어버린 얼굴’ ‘신과 함께’도 했었는데, 서울예술단에 오면 선배가 많거든요. 학교에 온 듯 배워갈 수 있는 시간이에요. 이번엔 민찬홍 작곡가와 음악적 성향도 진짜 잘 맞구요. 제가 밝은 성격과 달리 허스키한 목소리가 장점이자 단점인데, 거기 딱 맞는 음악을 주셨거든요.”(정)

“저는 우리 역사물이라 큰 매력을 느꼈어요. 조선시대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것도 기대되구요. 언제 또 왕이 되보겠어요. 전 작품인 ‘이블데드’ 때는 비정규직 마트 알바생이었는데, 신분이 수직상승해 굉장히 기분이 좋습니다.(웃음)”(박)

“남성적인 파워풀 군무도 볼거리”

‘칠서’는 홍길동전의 프리퀄이지만 ‘한국판 수퍼히어로’의 탄생과는 거리가 멀다. 판타지 히어로물로 풀기에는 홍길동 탄생에 얽힌 역사의 무게가 만만치 않아서다. “실존 인물이 등장하는 역사적인 이야기를 권선징악으로 풀 순 없으니까요. 히어로를 꿈꾸는 과정 정도죠. 변화를 꿈꾸지만 아쉽게 좌절하는 게 요즘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이야기라 통쾌한 작품은 아니에요. 대신 남성적인 군무가 많아요. ‘강변칠우’ 안무가 정말 멋지죠. 저도 그걸 하고 싶어서 양반 체면도 잊고 괜히 뛰다가 헬스 트레이너 같다고 핀잔만 들었네요.(웃음)”(정)

강박증 걸린 광해와 야망에 찬 허균 캐릭터가 두 분 이미지와 좀 다른데요.
박: 살짝 제정신 아닌 사람처럼 보일 수 있어요.(웃음) 내면의 아픔에서 출발하거든요. 어려서 어머니 여의고 서자로 살면서 오랫동안 세자 책봉도 못받았잖아요. 전란 통에 왕위에 올랐지만 언제 뺏길지 모르는 입장이라 늘 ‘내편이 있을까’ 의심해야 했죠. 왕이라는 무거운 자리와 살얼음판 같은 삶을 살아가는 한 남자의 내면이 정말 고독했을 거 같아요. 그런 불안함을 잘 표현해야죠.

정: 굉장한 연기변신이 될 것 같아요. 항상 나이보다 어린 역할을 했었거든요. 이번엔 심지어 아들까지 데리고 다니는 무게감에다 야망으로 똘똘 뭉친 진지한 역할인데, 늘 이런 걸 꿈꿔온 터라 정말 감사한 기회죠. 허균이 천재적인 모습 안에 미친사람 같다고 할 정도로 오묘한 면이 있었다고 하니, 저만이 표현할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것 같아 설레는 중입니다.

서자들이 혁명을 꿈꾸는 내용이라 시대적으로 공감대도 클 것 같아요.
박: 작품에서 용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거든요. 용은 왕을 상징하지만 노루의 뿔, 닭의 발처럼 흔하고 천한 동물들의 모습을 모아 상서로운 동물이 된거잖아요. 가장 낮은 사람인 백성이 모여 왕이 된다는 민본의 개념이 무대미술에 용의 이미지로 담겨 있어요. 무대와 영상 디자인을 맡은 오필영·조수현, 두 남자의 콜라보도 볼만할 겁니다.

정: 그게 바로 이 작품의 매력이죠. 결국 용이 백성을 바라볼 때 잘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거죠. 백성도 항민·원민·호민 세 부류로 나눠져요. 삶에 항복하는 항민, 원망만 하는 원민, 바꾸려 일어서는 호민이죠. 우리가 바꾸려 노력해야 된다, 호민이 일어설 때 원민도 일어선다는 메시지가 참 와 닿더군요. 허균이 중요한 것도 하늘 아래 인간을 신분으로 나눌 수 없다는 사상을 관철한 인물이란 점이죠. 세상에 굴복하지 않는 강단있는 인물로 표현하려 해요. 

허균과 광해는 대결구도로 엮이겠네요.
박: 단 둘이 나오는 씬이 여럿 있어요. 허균이 광해의 어릴 적 스승이라 애증 관계랄까요. 허균을 속으로는 의지하면서도 결국에는 아무도 믿지 못한 게 비극을 낳는 거죠.

정: ‘성군의 길’이라고 7~8분짜리 긴 대곡을 듀엣으로 부릅니다. 광해는 백성과 전쟁을 같이 겪은 유일한 임금이니, 백성의 고통을 지켜본 광해만큼은 성군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허균이 혁명을 도모하는 거죠. 강현이와 듀엣은 처음인데 서로 잘 맞아서 즐거워요. 둘 다 팝이나 록을 좋아하고, 김성수 음악감독도 록스피릿이 충만하시잖아요. 파워풀한 듀엣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팬텀싱어3’라는 마음으로 1대1 대결처럼 강한 어택으로 임하려고 합니다.(웃음)  

“‘팬텀’ 결승은 콘서트처럼 즐겼으면”

사실 정원영도 팬텀싱어 출연을 고민했다. 올해 초 뮤지컬 ‘스모크’에 함께 출연한 고은성·윤소호가 팬텀싱어 덕분에 단기간에 큰 사랑을 얻은 걸 목격하고서다. 하지만 솔로의 운명을 타고난 ‘독보적인 음색’ 탓에 포기했다고. “앙상블 때부터 합창에 안 맞는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같은 음을 내도 톤이 달라서 다른 음으로 들리니까요. 저도 10년 넘게 배우 했는데, 단기간에 많은 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건 매력적으로 보이더군요. 제가 강현이처럼 3년 차일 땐 앙상블만 하고 있었거든요.”(정)

그는 2년전 뮤지컬 ‘베어 더 뮤지컬’에서 자신과 더블캐스팅된 신인배우로 처음 만난 박강현이 어느새 비슷한 동료가 됐다며 “한국 뮤지컬 배우 중에서 노래로 크게 알려질 배우”라고 추켜세웠다. “이제 시작인데 이미 실력이 충분해요.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어서 다양한 장르에 스며들 수 있죠. 그새 변한 느낌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섭섭할 텐데 한결같은 태도가 좋구요. 늘 진지한 고민을 털어놓는데, 저도 경험해 왔던 고민들이라 더 애정이 갑니다.”(정)

박강현은 “형의 신혼집에서 곧잘 밥도 얻어먹는다”면서 “배우로서뿐 아니라 인간적으로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는 고마운 존재”라고 했다. 그렇다면 ‘팬텀싱어’ 결승을 앞둔 강현에게 조언을 해달라 부탁하니 정원영은 아버지 정승호, 이모 나문희 배우의 명언을 들려줬다.

“시즌1 때도 출연자들이 승부보다 너무 즐거웠다, 행복했다고 하잖아요. 배우도 노래부를 때 평가보다 관객이 좋아해주면 되거든요. 내 목소리를 좋아하는 최소한의 관객만 바라보면 되죠. 아버지 말씀이 ‘명 MC는 한 명만 바라보고 수천명이 날 보게 하는데, 초보자는 수천명을 다 바라본다’고 하시더군요. 강현이에게도 좋은 노래 들려주는 콘서트같은 시간이면 좋겠어요. 이모는 ‘항상 찾기 쉬운 사람이어야 한다’고 하시죠. 톱배우가 되더라도 콧대 높이지 않고, 리딩 워크샵에서도 충분히 찾을 수 있는, 저도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정)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서울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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