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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전자제품과 달라, 손 많이 가고 관리도 잘해야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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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호 06면

26년 차 ‘개아빠’가 본 반려견 논란

지난 25일 서울 면목동에 있는 집으로 퇴근한 ‘개아빠’ 전기창씨가 하루 종일 자신을 기다린 반려견 첫째 구찌(왼쪽)와 막내 미유(가운데)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둘째인 보노(원 사진)는 훈련견 대회 준비를 위해 대전에 있는 전씨의 부모 댁에 가 있다. 김경빈 기자

지난 25일 서울 면목동에 있는 집으로 퇴근한 ‘개아빠’ 전기창씨가 하루 종일 자신을 기다린 반려견 첫째 구찌(왼쪽)와 막내 미유(가운데)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둘째인 보노(원 사진)는 훈련견 대회 준비를 위해 대전에 있는 전씨의 부모 댁에 가 있다. 김경빈 기자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눌린 듯한 코를 가진 묵직한 중형견(犬)이 득달같이 문 앞으로 뛰어나왔다. 이에 뒤질세라 조그만 체구에 빛나는 눈을 가진 소형견이 달려나와 발을 정신없이 핥아댔다. “우리 첫째 구찌(퍼그)와 막내 미유(치와와)예요. 대형견인 둘째 보노(래브라도 레트리버)는 지금 훈련견 대회 준비차 대전에 있는 고향집에 잠시 가 있습니다.” 주인인 전기창(26)씨는 소문난 ‘개아빠’다. 서울 면목동 소재 방 2개짜리 빌라에 친구와 함께 살며 크기도 성격도 제각각인 반려견 3마리를 키우고 있다. 사람 2명, 반려견 3마리로 구성된 요즘 세상에 흔치 않은 ‘대(大)가족’이다.

가족처럼 돌볼 수 있는지 살펴야 #모든 개는 물 수 있다고 생각해야 #남은 싫어할 수도, 목줄은 짧게 #조심하는 견주 일방적 매도 곤란

전씨는 날 때부터 반려견과 함께 성장해 왔다. 인생 첫 반려견은 부모님이 키우던 시베리안허스키였다. 이후 이른바 ‘똥개’로 불리는 믹스견을 줄곧 키워 왔다. 반려견이 너무 좋아 고등학교(유성생명과학고)와 대학(우송정보대)에서도 애완동물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애견카페를 운영하면서 자신만의 반려견을 입양했다. 구찌는 2013년, 보노는 2014년, 미유는 3개월 전부터 한가족이 됐다. 지난해 말부턴 네이버 카페 ‘퍼그홀릭’을 개설해 운영 중이다. 퍼그 종인 구찌를 키운 경험을 공유하는 카페다.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회원 수가 벌써 1000명이 넘는다.

사람들 시선 무섭도록 차가워져

어떤 동물한테 물렸나 그래픽

어떤 동물한테 물렸나 그래픽

전씨를 만난 건 지난 25일 오후였다. 인기 아이돌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최시원씨 가족의 반려견이 유명 음식점 대표를 물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으로 반려견과 견주에 대한 사회적 비판여론이 극에 달했을 때였다. 그에게 3마리 반려견을 건사하는 ‘가장’으로서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는지 물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에요. 요즘 저희 카페에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이 많이 올라오고 있어요. 매일 똑같이 다니던 산책길인데 사람들 시선이 무섭도록 차가워졌으니까요. 정말 에티켓 다 지키며 조심해서 개 키우는 사람도 많은데 일방적으로 매도당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반려견을 비난해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거라 봐요. 본질은 훈련과 관리를 소홀히 한 견주의 잘못이죠.”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가 1000만 명이라고 합니다.
“양적으로는 많이 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문화는 외국에 비해 미흡한 게 많아요. 내 반려견이 나한텐 이쁘죠. 그렇다고 다른 사람한테도 이쁜 건 아니거든요. 혐오스러울 수도 있고 공포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이걸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미흡한가요.
“일단은 목줄입니다. 3m 이상 늘어나는 자동 목줄을 사용하는 견주가 많은데 공원 같은 데서 애들이나 노인들한테 달려들어 사고가 날 수 있거든요. 저는 외부에 나갈 땐 늘어나지 않는 1.8m짜리 목줄을 채웁니다. 횡단보도 같은 곳에선 아주 짧게 잡죠. 밀집한 공간에선 개를 안고 있어요. 간혹 공원이라고 반려견을 풀어놓는 이들도 있는데 위험한 일이죠. ‘우리 개는 사납지 않다’ ‘우리 개는 물지 않는다’ ‘작아서 괜찮다’는 생각이 사고를 부릅니다. 모든 개는 물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해요. 개가 사람만 무는 게 아니에요. 개들끼리 물 수도 있거든요. 제 생각엔 도심에서 반려견을 목줄 없이 마음대로 풀어놓을 수 있는 공간은 자기 집을 빼곤 반려견 전용 놀이터, 애견카페, 훈련소 정도라고 봅니다.”

무는 습성 있으면 꼭 입마개 채워야

입마개 착용 문제도 논란이 됐죠.
“자기 개가 평소에 무는 습성이 있는지는 견주가 당연히 압니다. 장판이나 벽지를 물어뜯잖아요. 주인을 물 수도 있고요. 그런 개들은 외부에 나갈 때 입마개를 반드시 채워야죠. 반려견 행사 때 보면 입마개를 채워야 하는 맹견인데도 거부하는 이들이 있어요. ‘저 개도 사나워 보이는데 왜 우리 개만 입마개를 하느냐’고 말하죠. 사고 위험이 크다고 말해도 기분 나빠해요. 아직 반려견 문화가 성숙되지 않아 벌어지는 일이에요.”  (전씨의 반려견들은 초면인 기자를 보고도 큰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길에서 마주치기만 해도 으르렁거리는 여타 개들과는 달라 보였다.)
“주기적으로 훈련을 시킵니다. 짖으려 하거나 물려고 하면 식초를 섞은 물을 뿌리거나 큰소리를 내 경고하죠. 그래야 안 짖고 안 무니까요. 공동주택에서 옆집 개가 짖으면 얼마나 민폐입니까. 견주가 조심해야죠. 중요한 것은 한 번 훈련시켰다고 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TV 프로그램의 잘못이 커요. 방송에 나와 사육사한테 한 차례 훈련받은 뒤 우리 개가 달라졌다고 하잖아요. 대부분의 사람이 그걸 보고는 나쁜 버릇이 쉽게 고쳐진다고 오해합니다. 정말 아니에요. 견주가 애정을 가지고 꾸준히 주기적으로 훈련시켜야 합니다. 개도 자꾸 잊어버리거든요.”
견주가 할 일이 상당히 많습니다.
“반려견을 키우는 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안타까운 건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슨 전자제품 사는 것처럼 생각하고 반려견을 입양해요. 작고 이쁘니까 사는 거죠. 그런데 전자제품과 달리 반려견은 손이 아주 많이 가거든요. 배변훈련도 시켜야 하고 목욕도 시키고 발톱 관리도 해 줘야 하니까요. 그런데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관리를 못하게 되면 개들이 집안 곳곳을 물어뜯고 똥오줌을 아무 데나 싸고 시끄럽게 짖게 됩니다. 더구나 작았던 개가 자라서 커지기라도 하면 집안의 골칫거리로 전락하기 일쑤죠. 참다 참다 결국 동물병원 같은 데 버리는 거죠. 쉽게 봐선 안 됩니다. 도시에서 반려견과 동거하려면 최소한 내 가족처럼 돌볼 시간적·경제적 여유가 있는지 자신의 상황을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전씨에게 마지막으로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데 반려견을 키우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기자의 우문(愚問)에 개아빠 경력 26년 차인 전씨의 현답(賢答)이 돌아왔다.

“다들 ‘자식 키워서 남는 게 뭐냐’고 물으면 ‘그냥 있는 게 행복이다’고 하잖아요. 반려견도 마찬가지예요. 그냥 존재 자체가 제겐 행복이고 위안이니까요.”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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