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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농사 안 짓는 농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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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농산물 개방 확대로 쌀 대체작물 개발이 시급합니다. 우리 고장에서는 벼 농사 대신 콩을 심어 승부를 걸겠습니다."

전북 완주군 동상면에 벼 농사를 짓지 않는 마을이 생겼다. 학동.다자.입석.단지 등 4개 마을 주민은 올해부터 주변에 있는 논.밭 40㏊(12만 평)에 벼 대신 콩을 심기로 했다.

농산물 수입 확대로 어려움에 처한 농촌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급속하게 고령화하는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동상면은 전주에서 자동차로 20~30분 거리에 있으면서도 높은 산.호수 등으로 둘러싸여 한때 전국의 8대 오지로 꼽힐 만큼 험한 지역이다.

면 전체 면적 가운데 논.밭이 10%가 채 안 될 정도다. 지난해의 경우는 92㏊의 논에 벼를 심고 17㏊에는 콩을, 나머지는 인삼.고추.표고 등 특용작물을 재배해 왔다. 최근 들어 65세 이상이 전체 주민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노인 인구가 많다. 농민들이 벼 대신 콩 농사를 짓기로 한 것은 지난해 7월 학동마을에 청국장 공장이 들어선 것이 계기가 됐다.

완주군 등의 지원을 받아 지은 청국장 공장은 55세부터 78세까지의 주민 20여 명이 운영한다.

매주 월.화.목요일 함께 모여 공동 작업을 통해 만든 제품은 '깊은 숲 학동마을 생청국장'이라는 상표로 팔리고 있다.

이 청국장은 오염되지 않은 청정 지역에서 만든 것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많을 때는 한 달에 2000건 이상 주문이 쏟아졌다. 요즘에도 하루 30여 건씩 제품 주문이 들어온다.

원료가 되는 콩 수요가 덩달아 급증했지만 지역 생산품만으로는 제대로 충당하지 못 할 만큼 물량이 달렸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주문이 들어올 경우 이를 줄인 적도 있고, 2주 이상 공장 가동을 중단한 적도 있었다.

이에 마을 주민은 동상면사무소와 협의해 콩 농사가 수익성이 높고 일손이 적게 들어 노인 인구가 많은 지역 실정에 맞다고 판단해 아예 쌀 대체작물로 육성하기로 결정했다.

면사무소가 실제 농사를 짓는 농민과 함께 따져 본 결과 콩을 심을 경우 200평 한 마지기의 순수익이 43만여원으로 벼(18만원)에 비해 2.5배 가까이 되었다. 또 농약.물 관리 등이 필요 없어 노동력도 60~70% 정도 절감할 수 있다.

동상면 전체 140㏊(42만여 평)로 콩 농사를 확대할 경우 순수익은 9억7000여만원으로 벼(3억7000여만원)보다 세 배 가까이 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소명영 면장은 "다른 17개 마을 이장도 내년부터는 동참해 논.밭에 모두 콩을 심어 면 전체를 벼 없는 고장으로 만들 계획"이라며 "한국을 대표하는 콩의 고장으로 자리매김을 하는 한편 두부공장 등을 건립해 부가가치를 높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전주=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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