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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비정규직 20만5000명 정규직 전환…재원 대책은 부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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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2020년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 20만5000명 정규직 전환…재원 대책은 부실

정부가 2020년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 20만50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 중 7만4000명을 올 연말까지 전환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연차별 전환 계획 확정 #상시, 지속 업무하는 17만5000명 우선 #60세 이상 청소 근로자 등 3만명 추가 전환 #사무보조원, 경비원 등 혜택 볼 듯 #임시직 교사 등은 결국 제외 #재원대책은 부실, 장기 추계도 없어

고용노동부는 25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특별실태조사 결과 및 연차별 전환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이성기 차관 주재로 관계 부처와 양 노총, 전문가가 참여한 가운데 개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TF 회의에서다.

(세종=연합뉴스) 이재림 기자 = 이성기 고용노동부 차관(오른쪽)이 25일 정부세종청사 11-1동 대회의실에서 열린 공공부문 비정규직 테스크포스(TF) 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저작권자 ⓒ 1980-2017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세종=연합뉴스) 이재림 기자 = 이성기 고용노동부 차관(오른쪽)이 25일 정부세종청사 11-1동 대회의실에서 열린 공공부문 비정규직 테스크포스(TF) 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저작권자 ⓒ 1980-2017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지난 7월 20일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른 구체적 실천 계획으로 보면 된다. 고용부는 가이드라인 발표 이후 853개 전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비정규직 근로자 현황, 잠정 전환 규모, 전환 시기 등에 대한 특별 실태조사를 해왔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는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의 선언과는 달리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건 아니다. 상시·지속적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 중 전환이 가능한 경우만 대상에 포함됐다. 이 차관은 “육아휴직 대체, 계절적 업무 등 일시·간헐적 업무는 그 특성상 비정규직 사용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자료:고용노동부

자료:고용노동부

이번 계획에 따르면 공공부문에서 상시·지속적 업무를 수행하는 비정규직은 총 31만6000명이다. 이중 가이드라인 발표 때 전환 예외자로 규정된 교·강사, 60세 이상 고령자, 운동선수 등 14만1000명을 제외한 17만5000명이 대상이다. 기간제가 7만2000명, 파견·용역이 10만3000명이다. 고용부는 여기에 3만명을 추가로 전환할 여지가 있다고 봤다. 대다수가 60세 이상인 청소·경비 용역이 대표적이다. 고용부는 현재 청소·경비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의 정년을 65세로 조정할 것을 권고한 상태다.

일단 잠정 전환규모 17만 5000명 중 7만4000명은 올해 내로 전환 작업을 완료하기로 했다. 기간제가 5만1000명, 파견·용역이 2만3000명이다. 이 차관은 “나머지 비정규직도 기간제는 2018년 초까지 파견·용역은 계약 종료 시기를 감안해 2020년 초까지 단계적으로 전환을 완료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체 잠정 전환 인원을 고용형태별로 살펴보면 기간제가 7만2000명(47.7%), 파견·용역이 10만3000명(62.5%)인 것으로 나타났다. 부문별로는 공공기관이 9만6030명으로 가장 많았고, 정규직 전환비율(71.2%)도 가장 높았다. 지방자치단체가 2만5263명으로 뒤를 이었다. 교육기관은 교·강사가 전환 대상에서 빠진 탓에 전환비율이 29.6%로 낮았다.

직종별로는 기간제의 경우 사무보조원이 1만4000명으로 가장 많았고, 연구(보조)원 9000명, 의료업무 종사자 7000명 순이었다. 파견·용역은 시설물 청소원(3만2000명), 시설물 관리원(2만1000명), 경비원(1만7000명) 순으로 전환 규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고용노동부

자료:고용노동부

그러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환에 따른 구체적인 재원마련 계획은 내놓지 않았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인건비와 연금 등 장기적으로 필요한 재정 소요가 크다. 그럼에도 고용부는 필요한 재정이 얼마인지 추정치조차 발표하지 않았다. 일단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는 공공기관 등은 예산으로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이와 관련해 1226억원이 내년 예산에 편성돼 있다. 그러나 이 돈은 기간제를 무기계약직 형태로 바꿀 때 드는 처우개선비다. 식비 13만원과 복지포인트 40만원, 80만~100만원가량의 명절 휴가비 등이다. 임금체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본 임금이 상승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게다가 이 1226억원은 한 해만 지원하고 마는 돈이 아니다. 류경희 공공노사정책관은 “파견·용역 근로자의 경우 직접고용으로 전환 시 이윤이나 일반관리비 등이 10~15%가량 절감되기 때문에 추가적인 재정 부담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더 문제다. 고용부는 ‘기간제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더라도 일률적인 호봉제 편입을 지양하고 지속가능하고 합리적인 임금체계 도입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면서 사실상 기존 정규직과 다른 임금 체계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류 정책관은 “임금 체계까지 정부가 일률적으로 이래라 저래라 정해주긴 어렵다”며 “기관의 특성을 반영해서 결정하라는 것이 고용부의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경우 기관 내 또 하나의 차별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노노(勞勞) 갈등의 씨앗이 될 공산이 크다.

파견·용역 근로자를 직접 고용할 지, 자회사를 만드는 방식으로 처리할 지도 명확하지 않다. 이 역시 개별 공공기관의 사정에 따라 결정하라는 게 고용부의 입장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란 방향을 잡아놓고 찍어 누르듯 지시하면서 파생되는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이다.

자료:고용노동부

자료:고용노동부

이렇다 보니 곤란한 처지에 놓인 공공기관이 한둘이 아니다. 인천공항공사는 당초 직접고용하기로 했던 파견·용역 근로자를 다른 입자지원자들과 공개 경쟁시키기로 해 논란이 불거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24일 ‘정부 출연연구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경쟁채용’과 ‘연수직 신설’ 등을 담았다. 당연히 노조는 반발하고 나섰다.

이 차관은 “4차 산업혁명 도래 등 소용돌이 치는 경제환경 속에서 모든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을 언급하면서 이에 따라 저숙련 근로자가 도태될 가능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는데, 업무가 자동화되면 직무 전환이 불가피하다. 그러면 교육 프로그램 등 운용하면서 인건비 이외에 별도의 예산을 추가로 투입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그만큼 신규 채용을 줄이게 돼 청년 일자리 문제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그럼에도 정부는 직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1단계 정규직 전환 작업을 차질 없이 진행하면서 2·3단계 전환 준비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이번 정규직 전환은 일단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지방공기업, 국공립 교육기관 등만 대상이다. 2단계 전환대상인 자치단체 출자·출연기관, 공공기관 및 지방공기업 자회사에 대해서도 연말까지 실태조사를 마칠 계획이다.

이 차관은 “이번 정규직 전환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국회·대법원·헌법재판소·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헌법기관에 대해서도 가이드라인과 우수사례를 공유해 정규직 전환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 차관은 또 “다만 정규직을 채용할 수 있는 업무에서도 비정규직을 남용하고, 이를 방관하는 잘못된 고용관행은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며 “일부 아쉬움이 있겠지만 노사 모두 힘을 보태달라”고 말했다.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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