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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문재인 정부의 ‘넛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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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정치부 차장

고정애 정치부 차장

헛심 썼었다. 2014년 어렵사리 8개월 만에 영국 정부기구의 사람과 e메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노력 대비 내용이 충실한 건 아니었다. 그때가 떠오른 건 올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리처드 세일러가 선정돼서다. 그의 저서 『넛지』의 애독자 중 한 명이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였다. 2010년 집권하자 곧 총리실 산하에 ‘넛지 유닛’이란 별칭의 ‘행동통찰팀’(the Behavioural Insight Team·BIT)을 만들었다. ‘똑똑한 선택을 유도하는 옆구리 찌르기’를 공공정책에도 도입하겠다는 취지였다. 2014년 취재했던 기구다.

BIT 출신들이 근래에 낸 두 권의 책으로 당시의 ‘씁쓸함’을 달랬다.

“1960년대 영국의 자살률이 떨어졌다. 삶을 사랑하게 돼서가 아니다. 일산화탄소 중독사가 줄었는데 북해 유전 개발로 천연가스 공급이 늘어서다. 천연가스의 경우 일산화탄소 발생량이 적어 머리가 아플지언정 죽진 않았다.”

“다락방 단열 시공을 하면 보조금을 주겠다는데도 외면하던 이들이 하겠다고 나섰다. 다락방 청소도 해주겠다고 해서다.”

때가 때인지라 진정 흥미로웠던 건 넛지 자체보다 BIT의 인선 과정이었다. 캐머런은 전전 정부(토니 블레어) 때 유사한 논의에 참여한 심리학자 데이비드 핼펀을 BIT의 책임자로 기용했다. 전 정부(고든 브라운)의 총리전략팀에서 일한 공무원을 총괄로 발탁했다. 핼펀은 저서에서 “정치인들은 내가 블레어랑 가깝게 일했다는 걸 별로 개의치 않았다”고 썼다. 둘만이 아니었다. BIT의 직속상관인 내각차관(관료 중 최고위직)은 블레어의 수석고문이자 브라운의 정부 정책 수장이었다. 13년 만에 보수당 정부를 이끌게 된 캐머런의 선택이었다.

최근 ‘유폐’를 자청한 전 정부 고위직 관료의 어두운 얼굴이 떠올랐다. 그나마 불려다니진 않으니 사정이 나쁜 건 아니었다. 실무자도 ‘부역자’ 취급을 받는 세상이다. 문재인 정부가 정책을 쏟아내지만 그걸 집행할 관료들에게 옆구리 찌르기로 전하는 메시지는 이러할 터다. 미래를 생각하면 요직(要職) 필요 없다. 일도 말자.

참고로 7명으로 출발한 BIT는 60여 명으로 늘었다. 영국만 아니라 미국·호주·싱가포르 등 5개 대륙에서 일하는 글로벌 기업이 됐다.

고정애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