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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우리 개는 안 물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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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양영유
양영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

2008년 7월 세계가 놀랐다. 11세 브라질 소년 가브리엘이 사나운 핏불종 개를 문 것이다. 친척 집에 놀러 갔던 가브리엘은 개가 갑자기 달려들어 물자 개의 목을 휘감고 같이 물었다. 힘껏 물다 송곳니까지 부러졌다. 이 소식은 전 세계로 타전됐고 가브리엘은 ‘개를 문 소년’으로 유명세를 치렀다. 19세기 미국 언론인 찰스 대너는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고 했다. 뉴스의 신기성과 희소성을 강조한 과장법이지만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곤 한다.

요즘은 개에 대한 뉴스 가치(newsworthy)가 바뀌었다. 반려동물이 급증하다 보니 이웃 간 분쟁과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빈발한다. 개인적으론 산행 때 마주치는 반려견이 참 싫다. 지난 주말에도 해발 471m 산 정상 근처에서 커다란 개 두 마리를 만났다. 목줄도 없었다. 온몸이 오그라들었다. “우리 개는 순해서 안 물어요.”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개 주인이 얄미웠다.

산에서 내려와 휴대전화 SNS를 보니 ‘사람 문 반려견’ 사건으로 와글와글했다. 서울 시내 유명 한식당 한일관의 50대 여성 대표 김모씨가 이웃집 개에 물려 엿새 만에 패혈증으로 숨졌는데, 그 개 주인의 신상이 털린 것이다. 배우이자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 멤버인 최시원씨였다. 비극은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일어났다. 김씨는 가족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든 프렌치 불도그에게 정강이를 물렸다고 한다. “피해자가 숨진 날 최씨가 그 개의 생일 파티를 열었다” “불도그가 경비원을 문 적도 있다”는 식의 미확인 ‘카더라’가 SNS를 누볐다. “개를 당장 안락사시켜라” “최씨 가족에게 책임을 물으라”는 주장도 있었다.

집 안에서 개와 함께 사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개가 침실과 거실을 마음대로 드나들게 하는 건 반대다. 주인의 재채기에도 놀라 야성을 드러내는 게 개 아닌가. 국내 개 물림 사고만 연간 1000건이 넘고, 집 안 진돗개가 한 살 배기를 물어 죽인 사건에 아랑곳없이 “우리 개는 천사”라는 착각 속에 산다. 늑대과인 개를 사람이 기르기 시작한 게 1만 년 전쯤이라고 한다. 야성은 순화될지언정 본성까지 소멸되지는 않는다. 개 물림 사고 역시 인간의 지배욕이 부른 화 아닐까. 맹견은 천사가 아니다.

양영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