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조영남, 앤디 워홀과 다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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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대작’논란에 휩싸이며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가수 조영남에 대해 법원이 유죄를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이강호 판사는 이날 조씨의 사기 혐의를 유죄로 인정,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조씨의 작품을 대작으로 판단한 근거로 작품의 양식이 ‘회화’에 해당한다고 봤다. 회화는 물감 등 도구를 통해 아이디어를 형상화 작업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작가의 개성과 화풍이 필연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외부에 표출되는 표현작업이 중시된다.

이 같은 이유로 조씨 역시 그동안 자신의 작품이 보조 인력의 손을 빌린 부분인 표현방식보다는 아이디어 등에 중점을 두는 ‘팝아트’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판사는 “조씨의 그림은 평면 캔버스에 붓, 아크릴, 물감 등 도구를 이용해 화투를 핵심 주제로 삼은 작품”이라며 “제작 방식과 작품의 형태에 따르면 양식상 회화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작품 활동에 관여한 보조의 역할이 조씨의 지휘ㆍ감독을 벗어났다는 점도 조씨의 작품을 대작으로 판단한 근거로 삼았다.

이 판사는 “송모씨 등은 조씨와 떨어진 독립 공간에서 스스로 선택한 재료를 이용해 자율적인 작업을 했다”며 “이 과정에서 조씨의 구체적이거나 상세한 지시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은 독립적으로 (조씨의 작품) 창작 표현에 기여한 작가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화투’ 연작 등이 대작 의혹에 휘말린 조영남씨. 2011년 자신의 화실에서 작업중인 조씨. [중앙포토]

‘화투’ 연작 등이 대작 의혹에 휘말린 조영남씨. 2011년 자신의 화실에서 작업중인 조씨. [중앙포토]

아울러 법원은 조씨 측이 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하면서 앤디 워홀 등 유명 팝 아티스트 등을 근거로 든 것에 대해서 “조씨의 작품 제작ㆍ판매 방식은 이와 다르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앤디 워홀 등의 경우 보조인력을 정식으로 고용해 자신의 지휘ㆍ감독 아래에 작품을 생산하고, 작업실을 ‘공장’이라고 부르는 등 대량생산을 떳떳하게 공개한다는 게 이 판사의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은 표현작업은 보조인력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작품을 구매하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 조씨의 경우 언론 인터뷰 등에서 직접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자주 노출하고, 송씨 등에게 작업을 맡긴다는 사실을 극소수만 인지했기 때문에 대중은 물론 대부분의 구매자도 몰랐다는 점을 차이점으로 지적했다.

이 판사는 “조씨의 행위에 대해 도덕적 비난을 넘어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찬반이 팽팽히 맞섰다”며 “창작활동, 작품거래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에 있어 누구나 공감하는 합리적 기준이 제시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씨는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대작 화가들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시킨 뒤 가벼운 덧칠 작업만 하고 이를 판매해 1억 8000만원 상당을 챙긴 혐의로 지난해 6월 기소됐다. 조씨는 그동안 재판에서 “조수를 쓰는 것이 관행이라고 생각했고 불법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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