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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한령 후폭풍…기로에 선 한국 관광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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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서울 충정로 난타전용관에서 열린 '난타' 20주년 축하공연. 1997년 호암아트홀에서 초연하며 한국 관광공연의 문을 연 '난타'가 중국의 한한령 여파로 혹독한 성인식을 치르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오후 서울 충정로 난타전용관에서 열린 '난타' 20주년 축하공연. 1997년 호암아트홀에서 초연하며 한국 관광공연의 문을 연 '난타'가 중국의 한한령 여파로 혹독한 성인식을 치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3일 ‘난타’ 20주년 기념 간담회가 열린 서울 충정로 난타 전용관. ‘난타’ 제작자인 송승환 PMC프러덕션 예술감독은 “가장 어려울 때 20주년을 맞게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국내 전용관 4곳 중 중국 단체 관광객 위주로 운영해온 충정로 전용관은 내년 폐관이 결정됐다. 중국의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조치 여파로 중국 관람객이 급감한 탓이다. PMC프러덕션 측은 “중국인 단체 관람이 사실상 전무한데다 북핵 위기까지 겹쳐 관람객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며 “4월부터 임시 휴관 중인 중국 광저우 난타 전용관의 향후 운영 방안도 현재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인 비중 69% 시장…올해 외국인 관람객, 작년 절반도 안돼 #‘난타’ 충정로 전용관 폐관…‘사춤’ ‘드럼캣’ 등 공연 중단 #“저가 경쟁으로 와르르 무너져” “체질 개선 기회 삼아야”

#사드 후폭풍…공연관광시장 휘청

중국의 한한령(限韓令ㆍ한류 규제령)이 장기화되면서 ‘난타’를 비롯한 국내 관광공연 산업이 휘청이고 있다. 한국공연관광협회에 따르면 2013년 16개였던 상설 관광공연 중 현재 운영 중인 콘텐트는 ‘난타’ ‘점프’ ‘비밥’ ‘페인터즈 히어로’ 등 8개뿐이다. 넌버벌 댄스 뮤지컬 ‘사춤’, 한류 문화콘서트 ‘와팝’, 넌버벌 퓨전 공연 ‘왓썹인제주’, 타악 퍼포먼스 ‘드럼캣’ 등이 올해 공연을 중단했다. 또 올들어 7월까지 관광공연을 관람한 외국인은 73만400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62만7655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올 4월 ‘드럼캣’ 공연을 중단한 제작사 명보아트홀 봉종복 대표는 “2003년부터 14년 동안, 메르스 때도 이어온 공연을 중단했다. 사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재개 시기를 기약할 수 없다. 정직원이었던 15명의 ‘드럼캣’ 배우들은 현재 실업 상태다. 기업 행사, 지역 축제 등에서 회당 개런티를 받고 이벤트 공연을 뛰고 있다”고 말했다.

#“저가 경쟁으로 시장 왜곡”

1997년 ‘난타’ 초연으로 출발한 국내 공연관광 시장은 2010년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06년부터 10년간 외국인 관광객 수가 2.8배 느는 사이 공연 관람객은 무려 8배 증가했다. 지난해의 경우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 1724만1823명 중 15%에 달하는 262만6358명이 관광공연을 관람했다.

가파른 성장세는 경쟁 과열을 불러왔다. 최광일 한국공연관광협회 회장은 “검증되지 않은 콘텐트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만들어지고 가격 경쟁으로 생존을 도모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관광공연 시장의 면역력이 약해졌다”고 말했다. 저가 경쟁 문제는 심각했다. 제작사들이 단체 관광객을 겨냥, 여행사 중심으로 ‘가격 후려치기’영업을 하면서 시장 질서가 무너졌다. 정가 4만∼6만원인 관광공연 티켓값이 1만원 선으로 떨어졌고, 지난해엔 면세점 사은품으로 남발되면서 티켓 한 장에 담배 한 갑 값도 못받는 경우까지 생겼다. 수익성 악화는 공연 질 저하로 이어졌다. 최 회장은 “공연의 수준이 내국인 관객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니 관광산업이 흔들릴 때마다 관광공연 시장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라고 짚었다.
중국 관광객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 중 중국인 비중은 47%지만, 외국인 공연 관람객 중 중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69%에 달했다.

#“체질 개선 기회 삼아야”

최 회장은 이번 위기를 두고 “안타깝지만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될 일”이라며 “관광공연시장 체질 개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브로드웨이ㆍ웨스트앤드의 공연처럼 내국인에게 검증을 거친 뒤 살아남는 콘텐트가 관광상품으로 활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침이 될 만한 모델도 있다. 올 3월부터 일본어 자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뮤지컬 ‘당신만이’다. 7년째 서울 대학로에서 ‘당신만이’를 공연 중인 제작사 도모컴퍼니의 윤민식 대표는 “지난해 11월 일본 도쿄에서 이틀 동안 공연했는데, 회당 300석 좌석이 모두 매진됐다. 관객 반응도 한국 관객과 비슷한 것을 보고 한국 창작 뮤지컬에 대한 잠재 수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자막 서비스와 동시에 일본 여행사 사이트에 배너 광고를 걸어 한국 여행을 계획하는 관광객들이 미리 티켓을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서비스 이후 ‘당신만이’ 관람객 중 일본인은 월 100명 정도다. “수는 많지 않지만 시장 상황이 좋아지면 10배, 20배 성장하리라 기대한다”는 윤 대표는 지난달 28일부터 한국관광공사의 지원을 받아 중국어ㆍ영어 자막 서비스도 한다. 또 중국내 한국 관광정보 포털사이트 ‘한유망’ 등에 ‘당신만이’ 정보를 올려 중국인 관광객을 공략하고 있다.
PMC프러덕션 대표를 지낸 김용제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부회장도 “단체 관광객의 수동적 관람에 맞춘 콘텐트에서 벗어나 자유 여행객 한 사람 한 사람이 만족할 만한 질 높은 공연을 만들어야 한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또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의 역사ㆍ문화를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관광공연 콘텐트가 숙성ㆍ개발될 때까지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관광공연=관광자원으로 활용 가능한 문화공연 콘텐트. 우리나라에선 주로 언어장벽이 낮은 전통 무용극이나 타악ㆍ비보잉ㆍ드로잉 등 넌버벌 공연이 관광공연으로 개발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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