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도우미로 속여 6000만원 … 복지급여·연금 줄줄 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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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서울에서 장애 아동을 키우는 엄마 A씨는 장애 아동 부모 B씨에게 접근했다. “아이를 돌보면서 매달 공짜로 돈을 받을 수 있다”고 꾀었다. 두 사람은 장애인 활동보조인 자격을 따고 아이들은 장애인 활동 지원 바우처(이용권) 대상으로 등록했다. 그러고는 두 사람은 활동보조인 카드를 바꿨다. 자기 애를 돌보는 데도 상대방 자녀에게 활동보조 서비스를 한 것처럼 허위 결제했다. 이렇게 3년간 정부 지원금 6000만원을 축냈다.

사망 숨긴채 연금 1363만원 받기도 #복지예산 급증하며 부정수급 늘어 #6년간 적발된 것만 184만 건 #새어나간 예산 4583억원에 달해 #“부처별 관리 시스템 일원화해야”

이는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6일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복지 부정수급 사례 중 일부다.

복지 예산이 해마다 급증하면서 예산이 새는 구멍도 커지고 있다. 복지 수당이나 서비스가 늘고 새로운 게 생기면서 제도의 허점을 악용할 기회가 커진다. 차근차근' 다지면서 복지를 늘리지 않고 정치권에서 경쟁적으로 늘리면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올해 복지 분야 예산은 129조5000억원. 지난해보다 6조원 이상 늘었다. 내년에는 146조2000억원으로 12.9% 증가한다.

김명연 자유한국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올해 8월 기초생활수급, 기초연금 등 8개 주요 급여·연금의 부정수급 적발 건수는 184만여 건, 액수로는 4583억원에 달했다. 올 1~8월 24만2107건으로 지난해 23만여 건을 이미 넘었다. 김 의원은 “앞으로 누수 복지 예산의 규모도 계속해서 커질 것으로 보인다. 새고 있는 복지 예산을 최소화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빼먹는 수법도 다양하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처럼 기초수급을 받기 위해 차명 계좌로 소득·재산을 숨긴다. 이렇게 하면 정부가 적발하기 쉽지 않다. 또 일부러 부양의무자와 관계를 단절하기도 한다. 건강보험 자격이 없는 사람이 다른 가입자의 건강보험증을 빌리거나 의료기관이 환자 입원 일수를 부풀리는 고전적인 수법도 여전하다.

취약계층에게 음악 수업을 제공하는 기관 대표가 자격증이 있는 지인을 허위 등록한 뒤 실제로는 무자격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7000만원을 부당하게 챙겼다.

13년6개월간 수급자가 숨진 사실을 숨기고 국민연금 1363만원을 부정하게 타낸 일도 있었다.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5년간 364명이 국민연금 10억6006만원을 부정수급했다고 밝혔다.

복지부 노인 일자리 급여와 산림청 공공산림 가꾸기처럼 각 부처의 비슷한 급여끼리 중복되기도 한다. 성일종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해 부처 사업 간 중복 지급이 의심되는 사례가 3만 건(142억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단 지급된 돈을 환수하기는 쉽지 않다. 부정수급자가 “못 내겠다”고 버티는 데다 압류 등 강제 조치를 하기 쉽지 않아서다. 지난해 해외체류 아동에게 잘못 나간 3374건의 양육수당 12억3000만원 중 환수된 게 11.8%(1억5000만원)에 불과하다. 김명연 의원이 공개한 8개 주요 급여·연금도 최근 6년간 부정수급액 중 1144억원을 환수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사전 차단 강화가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일종 의원은 “복지 대상자들의 소득·재산 정보를 확인하는 ‘행복e음’(사회보장정보시스템)을 개선하고, 부처별로 제각각인 복지 급여 관리 시스템을 일원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 사업을 외부에 위탁하기보다 정부가 사례 관리 등을 직접 챙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부정수급을 막으려면 국가가 복지 전달 체계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 우리는 민간에 의존해서 국가 재정을 집행하는 경향이 강한데 지방자치단체나 중앙정부가 복지 서비스 전달 과정을 직접 책임지는 영역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종훈·백수진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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