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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공일 칼럼

혁신성장은 시대적 사명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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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사공일 중앙일보 고문 전 재무부 장관

사공일 중앙일보 고문 전 재무부 장관

문재인 정부는 집권 후 5년간의 국정과제와 구체적 실행 방안을 마련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 없이 출범했다. 게다가 사상 유례없는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서둘러 치러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분석과 의견수렴 과정 없이 급조된 많은 선거공약의 부담을 안고 국정을 펴게 됐다.

대대적 혁신·생산성 향상 없인 #성장잠재력 0%대로 떨어질 것 #일자리 창출·4차 산업혁명엔 #노동시장과 교육 개혁이 핵심 #총괄조정은 경제부총리가 해야 #전 정부 창조경제 실패서 배우길

그 결과 출범 후 150일 남짓한 기간에 내놓은 주요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 공공부문 주도의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의 일률적 정규직화, 최저임금의 일괄 대폭 인상 등에 관해 상당수 전문가들과 업계의 회의와 비판이 이어져오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새로운 국정 어젠다로 대두된 것이 혁신성장이다. 물론 국정목표로서의 혁신성장도 명확한 개념 정립과 함께 최선의 실행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이 국정 어젠다만은 많은 국책 연구기관과 전문가들의 충분한 자문과 관련 부처 간의 원활한 의견조율로 앞으로 5년간 흔들림 없이 추진될 로드맵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필자는 보편화된 개념의 혁신성장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으로,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국정 어젠다가 돼야 한다고 믿는다.

크게 보아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 현재 우리 경제가 당면한 가장 큰 도전으로, 이미 2% 중반 수준으로 떨어져 있는 성장잠재력은 대대적 혁신을 통한 빠른 생산성 향상이 없을 경우 머지않아 0%대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둘째, 기존의 생산방식과 산업구조 및 고용구조, 인류의 생활방식과 소비 행태, 그리고 경쟁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범세계적 혁신 경쟁에서 뒤처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혁신성장의 개념과 실행방안 마련과 관련해 반드시 고려해야 할 구체적 사항 몇 가지를 짚어보기로 하자.

사공일 칼럼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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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국정목표로서의 혁신성장은 창업과 벤처뿐 아니라 모든 기존 기업과 기업가의 혁신을 포괄하는 개념임을 재확인해야 한다. 물론 현재 부진한 창업(스타트업 기업)과 벤처 및 중소기업의 혁신에 도움이 되는 여건 조성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혁신의 기초가 될 기술 개발에 더 여력이 있는 기존 대기업의 역할, 중소 벤처기업의 대기업과의 연계 성장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신산업이 일정 기간 규제 없이 사업을 할 수 있게 하는 소위 ‘규제 샌드박스’제 도입과 함께, 기존 산업에 대한 대폭적인 규제개혁도 균형 있게 추진돼야 한다. 아직도 국회 계류 중인 규제 프리존 특별법은 전국을 규제 프리존으로 만들겠다는 큰 목표에 이르는 첫 단계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특히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하지 않는 기존의 법규와 제도, 예를 들면 무진장한 빅데이터 활용을 막고 있는 개인 정보 보호 관련 법규 등의 전반적 개혁도 가속화돼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는 일자리 창출과 제4차 산업혁명을 강조하면서도 그 핵심인 노동시장 유연화와 교육개혁은 주요 정책 화두에서 제외하고 있다. 실제 이러한 규제개혁이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주 관심사가 돼야 할 것이다.

이러한 모든 업무는 정부 내 범부처적인 협조와 조정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현재 각 부처와 위원회 차원의 각종 실행 방안의 총괄·기획·조정은 경제부총리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일을 위해 경제부총리제가 존재하는 것 아닌가.

혁신성장에 국정의 최고 우선순위가 주어진다는 것은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국정운영 시간과 관심이 더욱 집중돼야 함을 뜻한다. 혁신성장 관련 이슈를 주로 다루게 될 4차산업혁명위원회 회의는 대통령 주재로 적어도 매월 정규적으로 개최돼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경제부총리 주도로 조율된 규제개혁 진척 사항은 소관 부처 장관이 직접 대통령에게 보고토록 하고, 다음 회의에서 반드시 그 추진 현황을 다시 보고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혁신성장을 위한 많은 새로운 입법과 기존 법률 개정의 원활화를 위한 협치(協治)의 일환으로, 여야 정책위의장의 동 회의 참석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

현재 대통령실에 마련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일자리 상황판은 ‘혁신성장 추진 상황’판으로 전환해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개혁과 입법 상황, 그리고 그 결과에 따른 일자리 창출 혹은 일자리 창출 기회 상실 효과를 기록하면 어떨까.

지난 정부가 내건 ‘창조경제’가 명확하고 구체성 있는 개념 정립 없이 정부 각 부처 차원의 산발적 시책으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수 있다. 실제 혁신성장과 창조경제는 슘페터 이론에서 태어난 쌍둥이와 같은 개념이다.

사공일 본사 고문·전 재무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