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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계 야당' 김호 감독, "정몽규 회장 주위에 '예스맨' 너무 많다"

중앙일보

입력

김호 전 국가대표 감독이 10일 경기도 용인 축구센터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용인=강정현 기자

김호 전 국가대표 감독이 10일 경기도 용인 축구센터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용인=강정현 기자

“졌지만 잘 싸웠다가 아니라, 졌지만 질 만했다.”
“월드컵에서 탈락한 네덜란드나 칠레에게 출전권을 양보해라.”
“머리에 포마드 바를 시간에 공이나 한 번 더 차라.”

축구대표팀을 향한 팬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 하다. 신태용(47)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11일 스위스 빌/비엔에서 끝난 모로코와의 평가전에서 1-3으로 졌다. 주전이 대거 빠진 사실상 모로코 2군에 '짓밟혔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졸전이었다. 전반 10분 만에 어이없이 2골을 내줬다. 지난 7일 러시아와 평가전(2-4패)을 포함해 2경기에서 7실점. 국민들의 실망감을 대변하듯 한국-모로코전 TV 시청률은 6.6%에 그쳤다.

10일 오후(현지시간) 스위스 빌/비엔 티쏘 아레나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모로코의 경기. 한국팀이 두 번째 골을 허용하고 있다. [빌/비엔=연합뉴스]

10일 오후(현지시간) 스위스 빌/비엔 티쏘 아레나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모로코의 경기. 한국팀이 두 번째 골을 허용하고 있다. [빌/비엔=연합뉴스]

이날 TV해설을 맡은 안정환(41)위원이 경기 도중 쏟아낸 “(월드컵 본선 32개국 중) 대한민국보다 못한 팀은 아직까지 없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제가 히딩크 감독이라도 한국에 오지 않았을 것 같다” 같은 ‘사이다 발언’은 인터넷에서 하루종일 회자됐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대표팀을 이끈 김호(73) 용인축구센터 총감독이 한국축구 문제점을 진단했다. ‘축구계 만년 야당’ 김 감독은 축구를 위해서라면 누구에게도 쓴소리를 하는 원로다.

수비수 출신인 김 감독은 수비의 문제를 먼저 지적했다. ‘즉각적인 수비’가 안되는 게 가장 심각하다고 봤다. 그는 “공을 뺏기면 문전으로 돌아와서 진영을 짜려고 하는데 그러면 늦다. 바로 수비로 전환해서 정확한 패스를 못하게 막고, 파울을 하더라도 문전에서 먼 곳에서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김 감독은 또 “수비수의 기본은 '인터셉트를 하라, 공격수가 돌아서지 못하게 하라, 몸싸움을 하라'는 것인데 그걸 제대로 하는 선수가 거의 없다”며 “어릴 적부터 인조잔디에서 운동을 하다 보니 화상·발목 부상 등을 우려해 태클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방어 기술도 둔해졌다”고 분석했다.

김호 전 국가대표 감독이 10일 경기도 용인 축구센터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용인=강정현 기자

김호 전 국가대표 감독이 10일 경기도 용인 축구센터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용인=강정현 기자

김 감독은 이어 ‘수비수의 중국화(대표급 수비수들이 중국 팀으로 이적한 뒤 기량이 떨어지는 현상)’ 논란에 대해서도 명확한 진단을 내렸다. 그는 “선수는 중국을 가든 남미를 가든 자기 하기 나름이다. 전문인으로서 가치를 더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선수들은 기량에 비해 과도한 돈을 받으면 해이해지고 나약해진다. 메시(아르헨티나)나 호날두(포르투갈)가 수천억대 수입을 올리면서도 더 나은 선수가 되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는 걸 보라”고 일갈했다.

10일 오후(현지시간) 스위스 빌/비엔 티쏘 아레나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모로코의 경기. 파울을 당한 손흥민이 그라운드에 넘어져있다. [빌/비엔=연합뉴스]

10일 오후(현지시간) 스위스 빌/비엔 티쏘 아레나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모로코의 경기. 파울을 당한 손흥민이 그라운드에 넘어져있다. [빌/비엔=연합뉴스]

A매치 9경기 만이자 대표팀에서 369일 만인 10일 모로코전에서 페널티킥 골을 넣은 손흥민(25·토트넘)에 대해서도 김 감독은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
“유럽에서 그 정도 뛰었다면 아시아에서는 여유있게 해야 하는데 실망스러웠다. 자기관리를 잘 못하고, 멘탈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 정도 클래스라면 전체적인 게임을 읽고, 완급을 조절하면서 동료를 리드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좋은 동료 있는 팀에서 골 많이 넣는 선수’에 그치고 말 것이다.”

대표선수들의 정신력과 체력에 대해서도 김 감독은 원로다운 진단을 내렸다.
“김남일 코치가 ‘빠따라도 치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는데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건 석기시대 얘기다. 대표팀에 들어온 선수에게 뭘 가르치고 바꾸려 하면 안 된다. 교육을 통해 이미 국가관과 책임감이 형성돼 있어야 한다. 그리고 대표팀에서는 선수와 소통하고 정신적인 긴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련한 리더가 도와줘야 한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사진=대한축구협회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사진=대한축구협회

그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에 대해서도 직격탄을 날렸다. 김 감독은 “정 회장이 뭘 많이 모르시는 것 같다. 현장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아닌가. 주위에 예스맨이 너무 많다”며 “축구협회는 군림해서는 안된다. 축구인을 도와주는 봉사단체다. 그런데 몇십년째 군림하고 있다. 축구인을 존중하고 그들을 지원하려는 자세로 몸을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감독은 “월드컵을 8개월 남긴 지금 감독을 교체하는 건 위험부담이 따른다. 그보다는 공격과 수비 전술을 가다듬을 수 있는 전문가를 ‘기술고문’ 형식으로 영입해 조직력을 끌어올리는 게 합리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또 “신태용 감독은 비판을 수용하되 비판받는 걸 두려워해선 안 된다. 짧은 시간에 뭘 새로 만들려고 하지 말고 공수에서 꼭 필요한 ‘경기 운영법’을 공유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10일 오후(현지시간) 스위스 빌/비엔 티쏘 아레나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모로코의 경기. 신태용 감독이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빌/비엔=연합뉴스]

10일 오후(현지시간) 스위스 빌/비엔 티쏘 아레나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 대 모로코의 경기. 신태용 감독이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빌/비엔=연합뉴스]

축구전문가들도 김 감독과 같은 맥락에서 쓴소리를 쏟아냈다. 박문성(43) SBS 해설위원은 “일대일 돌파가 안된다. 체력이 뛰어난 박지성, 터프한 김남일과 달리 요즘 선수들은 개성 없이 밋밋해졌다. 유소년 시절부터 개인보다 팀 성적을 중시하고 평균적인 선수만 찍어내는 환경 탓”이라고 지적했다.

신문선(59) 명지대 교수는 “건축으로 치면 슈틸리케가 준공을 못한 상황에서 신태용으로 시공자가 바뀌었는데 철학이 달라 엉망이 된 격이다. 건축주인 축구협회는 이를 방치했다”면서 “해외파 선수들의 컨디션이 올라오지 못하면 국내파 의존도를 높이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준희 (47) KBS 해설위원은 “가나다라, ABCD가 안 되는 팀이 무슨 ‘변형 스리백’ ‘포어 리베로’를 논한단 말인가”라며 “기본으로 돌아가 수비에 대한 상황별 교과서적인 지도가 필요하다. 공격은 그 다음 문제다. 전술 및 피지컬 코치 뿐만 아니라 수비 분야의 외국인 코치 영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영재 선임기자, 박린 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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