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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고장 난 생체시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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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양영유
양영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

우리의 긴 한가위 연휴 동안에도 ‘올해의 노벨상’ 시계는 정확했다. 생리의학상·물리학상·화학상·문학상·평화상이 예고대로 발표됐고, 오늘은 경제학상 주인공이 나온다. 고은 시인이 올해도 ‘희망 고문’에 시달린 건 유감이다. 북한의 도발에 경종을 울리듯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이 평화상에 선정된 게 인상적이다. 귀성·귀경길에서든, 해외 여행지에서든 많은 이가 그런 소식을 접했을 터다.

내일은 열흘 간의 달콤한 휴식을 뒤로하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날이다. 중간고사가 코앞인 학생들, 국정감사에 진을 빼야 할 공무원들, 다시 눈코 뜰 새 없을 샐러리맨들. 한데 연휴에 고장난 ‘생체시계’가 말썽이다. 과식과 늦잠·낮잠에 생체리듬이 엉켜버렸다. 시차를 이고 들어온 해외 여행객은 더할 듯하다. 어제도 11만 명이 입국하는 등 연휴 동안 200만 명이 공항을 드나들었다. 늘어진 생체시계를 정상으로 돌려놓는 게 이번 주의 숙제다.

생체시계 개념을 처음 설파한 이는 프랑스 천문학자인 장 자크 도르투드메랑이다. 1729년 정원에 있는 쌍떡잎 관상식물인 ‘미모사(Mimosa)’가 낮에는 태양을 향해 잎을 활짝 펼치고, 밤엔 오므린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신기하게 여겨 미모사를 캄캄한 지하실로 옮겨 관찰해 보니 정원에서 그랬듯 밤낮에 따라 똑같이 반응했다. 식물에 생체시계가 있다는 걸 알아낸 것이다.

그 후 수많은 과학자가 연구에 매달렸다. 결과는 놀라웠다. 사람과 일반 동식물 모두 24시간 주기에 따라 생체시계가 작동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 시계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의 비밀을 찾아낸 미국인 과학자 3명이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는다. 밤엔 졸리고 아침엔 깨는 규칙적인 몸의 신비, 즉 태양의 주기에 따라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유전자를 규명했다.

생체시계는 인간의 생물학적 자동시간표다. 삶과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인간은 오만하게도 그 규칙을 거스른다. 물론 긴 연휴나 휴가 중에 팽팽하게 감긴 자명종 태엽 같은 생체리듬을 차버리는 건 달콤하다. 이번에 우리들은 마음껏 그랬다. 그런 만큼 신속히 복구해야 한다. 정부도, 국민도 늘어진 시계를 조여야 한다.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여전하고 국가 경제도, 서민 경제도 어렵다. 다시 일상이다.

양영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