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 아동 방치’ 처벌법 없는데 … 괌서 체포된 판사 징계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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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 괌에서 두 아이를 차량에 방치한 혐의로 체포된 판사·변호사 부부 사건에 대해 법원이 진상 파악에 나섰다. 두 아이의 엄마인 설모(35) 판사의 소속 법원인 수원지법 측은 “사실 관계를 확인 중이다. 10일 설 판사가 출근하면 구체적인 상황을 물어보겠다”고 8일 말했다. 설 판사는 법원을 통해 “물의를 일으켜 말할 수 없이 송구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원, 품위 손상시킨 경우 징계 가능 #일각 “비난할 수 있지만 징계는 과해”

설 판사와 남편 윤모(38) 변호사의 체포 사실은 지난 3일 외신에 보도됐다. ‘괌(KUAM) 뉴스’는 두 사람이 2일(현지시간) 마트에 쇼핑하러 가면서 아들(6)과 딸(1)을 차 안에 두고 갔다가 주민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두 사람의 혐의는 ‘아동학대’와 ‘차량에 아동 방치’였다. 이들이 3일 밤 석방될 때까지 두 아이는 아동보호국에 맡겨졌다.

현지 검찰은 ‘차량에 아동 방치’ 혐의로만 두 사람을 기소했고 지난 5일 괌 가정법원은 두 사람에게 각각 벌금 500달러(약 56만원)를 선고했다. 캘리포니아주법을 따르는 괌에선 ‘차량에 아동 방치’는 경미범죄(Petty Misdemeanor)에 속한다. 6세 미만 아이를 보호자 없이 15분 이상 차 안에 방치한 사람은 50~500달러의 벌금형에 처하는 게 캘리포니아주법이다. 미국 50개 주 중 20여 개 주에 비슷한 처벌 규정이 있다.

지난 5일 한국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윤 변호사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글이 올라왔다. “정말 꿈같은 48시간을 보내고 나온 당사자”라고 밝힌 작성자는 “자극적으로 기재된 내용의 상당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괌 뉴스는 법정 서류를 인용해 부부가 최소 45분 동안 아이들을 차 안에 뒀다고 보도했다. 목격자가 오후 2시30분쯤 마트 주차장에 있었고 경찰이 도착한 것이 2시54분, 부부가 차에 온 것이 3시15분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윤 변호사는 “2시45분 넘어 차를 댔고 현장에 도착한 것도 3시5분이다”고 반박했다. 벌금을 납부한 부부는 선고 다음 날인 6일 아이들과 함께 귀국했지만 그사이 국내에선 실명과 머그샷(범인 식별용 얼굴사진)이 널리 퍼졌다.

법조계에서는 설 판사에 대한 징계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설 판사 부부의 행동은 국내에선 범법이 아니다. 하지만 법원은 품위를 손상하거나 법원의 위신을 떨어뜨린 판사를 정직·감봉·견책 등으로 징계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차량에 방치된 아동이 다치거나 죽으면 아동학대 혐의로 처벌할 수 있지만 차량에 아이를 방치한 것만으로는 처벌하지 않는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우리나라에선 해프닝 정도로 여겨지는 사안으로 판사를 징계하는 것은 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현 대한변협 회장은 “국내외 파장 등을 고려할 때 징계 여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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