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한가위 연휴가 더 서러운…무연고 사망자 유골, 묘지

중앙일보

입력

경기도 화성의 한 공설묘지에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묘소가 보인다. 비석 옆에는 이장(묘를 옮기는 것)광고가 붙었다. 김민욱 기자

경기도 화성의 한 공설묘지에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묘소가 보인다. 비석 옆에는 이장(묘를 옮기는 것)광고가 붙었다. 김민욱 기자

한가위 연휴를 하루 앞둔 2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연화장 추모의 집 1층. 유골함 보관 제단 앞 빨강·노랑색 조화가 화사하게 나붙은 봉안당을 지나자 문이 굳게 잠긴 4호실이 나타났다. 철문 앞엔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경고 문구가 붙었다.

무연고 사망자 유골 10년 보관 후 폐기 #경제적 이유 등 사정에 시신인수 거부 #미리 한가위 차례 지내는 가족과 대비 #공설묘지엔 잡초 무성한 묘비 눈에띄어 #보다 못한 주민들 무연고 묘 벌초하기도 #"매장서 자연장 선택할 수 있는 정책필요"

무연고 사망자의 유골을 보관하는 곳이다. 무연고 사망자는 가족·친척이 없거나 장례비용 부담 등 여러 이유로 시신을 넘겨받는 것을 거부당한 이다. 연화장의 협조로 안에 들어가 봤다. 보관함을 열어보니 화장 후 분쇄한 유골을 담은 진공 비닐 팩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겉면에는 이름과 화장일 등 기본적인 정보가 담겼다.

경기도 수원연화장 무연고 사망자 유골 보관장소. 김민욱 기자

경기도 수원연화장 무연고 사망자 유골 보관장소. 김민욱 기자

최근 몇 년 사이 목재 유골함에서 비닐 팩으로 바꿨는데, 공간이 좁아 나온 ‘고육지책’이라고 한다. 현재 연화장 내 무연고 사망자 유골은 모두 391기. 2001년 이후 가족 등 연고자가 찾아간 유골은 23기에 불과하다. 무연고 사망자 유골의 지방자치단체 보관 기간은 10년이다. 이 사이 연고자가 나서지 않을 경우 폐기 처리한다.

김연서 연화장사업소 관리팀장은 “최근에도 장례비용 등에 부담을 느낀 친아들이 아버지의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일이 있었다”고 씁쓸해했다.

추모의 집 주변에서는 미리 추석 차례를 지내거나 고인에게 헌화하는 가족들로 분주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차례상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했을 무연고 사망자 유골과 대비를 이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5년 기준 무연고 사망자는 1245명으로 집계됐다. 2011년 682명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29일 오전 경기도 수원연화장을 찾은 시민들. 아무도 찾지 않은 무연고 사망자 유골보관 장소와 대비된다. 김민욱 기자

29일 오전 경기도 수원연화장을 찾은 시민들. 아무도 찾지 않은 무연고 사망자 유골보관 장소와 대비된다. 김민욱 기자

앞서 지난 27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내 한 공설묘지. 좁은 산길을 따라 70m가량 오르니 야트막한 봉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덤 앞에 세우는 묘비·상돌은 없었다. 자연발생적 공설묘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연고 묘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봉분은 군데군데 붉은 흙을 드러냈다.

뒤엉킨 잡초와 무성한 줄기식물 사이로 검은색 묘비 하나가 빼곰히 나왔다. 잡초 등에 밑부분이 가려져 ‘성도진주(聖徒晋州)’ 일부 비석 내용만 확인 가능했다. 묘비 뒤엔 남은 가족들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지만, 무연고 묘나 다름 없다. 측면엔 이장(묘를 옮기는 것)광고물이 붙었다. 인근 또 다른 공설묘지는 잡초가 봉분을 뒤덮은 묘들이 중간중간 눈에 띄었다. 조화 하나 없는 묘소가 수두룩하다.

방치된 무연고 분묘 등을 보다 못한 지역 주민들이 직접 벌초에 나서기도 한다. 충남 논산시새마을회는 다음달 1일까지 부창동 공동묘지 등 13곳 무연고 묘 900기를 벌초할 계획이다. 전남 구례군 토지면 남·여 의용소방대 40여명은 지난 28일 금내리 공동묘지에 있는 무연고 묘 200여기를 벌초했다.

이재성 논산시새마을회장은 “풀이 무성하게 자란 무연고 묘의 벌초는 비록 보잘 것 없는 일로 여길 수 있지만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화성의 한 공설묘지 내 묘소 봉분 위에 잡초가 무성하다. 김민욱 기자

경기도 화성의 한 공설묘지 내 묘소 봉분 위에 잡초가 무성하다. 김민욱 기자

전국의 무연고 묘지는 상당한 규모로 추정된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에 따르면 공유지를 점유하고 있는 무허가 묘는 4673개 군락이다. 대부분이 무연고다. 면적은 6896만㎡에 이른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34배다. 무연고 묘는 지자체가 이장하려 해도 제약이 뒤따른다. 국민 정서상 묘소가 있는 땅이 개발되지 않는 이상 후손 등 연고자가 나타날 때까지 사실상 기다려줘야 한다고 한다.

다행히 무연고 묘지는 미미하지만 감소추세로 전해진다. 화장 비율이 80% 정도로 높은데다 기존 매장 분묘도 개장 뒤 화장처리하는 일이 늘어서다.

정혁인 한국장례문화진흥원 정책기획부장은 “공설묘지 중 상당수는 과거 무연고 묘가 하나 둘씩 들어서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며 “전체 분묘 총량은 줄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무연고, 무허가 묘를 직접 정비하기 보다는 기존 매장 묘를 잔디형 등 자연장으로 바꿀 수 있는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수원·화성=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